이정엽 시간강사
(연합전공 정보문화학)
국문과 박사과정 시절, 나는 다소 고리타분한 본과의 커리큘럼을 벗어나 두 과목을 타과에서 수강하는 외도를 한 적이 있다. 미학과에서 개설했던 음악미학관련 수업 하나와 언론정보학과에서 개설했던 뉴미디어 관련 수업이었다. 두 과목 다 모두 인문사회계열의 대학원 수업이 그렇듯이 대가의 고전이나 논문을 강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대가들의 사상이란 대개는 아주 농축된 것이어서, 여러 갈래로 생각을 뻗어나가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회과학이란 모호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이론에 맞추어 쾌도난마 하는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이 분야에서도 대가들은 생각의 갈래를 여러 개로 뽑아낼 수 있는 포괄의 미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홀(E.T. Hall)의 「문화의 패러독스」라는 글은 그 이후에도 종종 다시 꺼내어 볼 정도로 인상 깊었다. 홀은 문화권에 따라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주로 북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노크로닉 타임(monochronic time; M-타임)과 남유럽, 중동, 남미, 아시아 쪽 사람들이 사용하는 폴리크로닉 타임(polychronic time; P-타임)이 그것이다.
 
M-타임은 시간을 분절하고 쪼개고, 한 번에 하나의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약속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가 필요한 방식이기도 하다. 반대로 P-타임은 동시에 여러 개의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은 한 번에 한 사람을 만나기보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나서 일처리를 하며, 약속 자체보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시간의 범위를 상당히 편안하게 정해놓고 그 안에 개인의 업무 강도를 조절하여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을 꾀한다. 따라서 M-타임의 사람과 P-타임의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방식에 익숙지 않아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된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와 코리안 타임에 익숙해지고 이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도 이러한 문화의 차이에서 기원한다.
 
이렇게 본다면 M-타임이 P-타임보다 일을 처리하는 데 더 우월하고 효율적인 방식이라 생각이 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홀의 견해이다. P-타임 문화권에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간섭’하고 ‘참견’하면서 전체적인 조율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끊임없는 간섭과 참견은 P-타임의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게 해주는 집단의 힘이자 원동력이기도 한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건대 나는 전적으로 P-타임으로 운영되는 가정과 인간관계,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나 자신의 자율이란 그다지 주어지지 않고, 타인의 욕망을 나 자신의 욕망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게끔 강요받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여 고향을 떠나온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이러한 간섭과 참견은 그 절대적인 양(量)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많은 종류의 취미와 개인의 만족을 위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할 외부적인 반대급부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후 군대에서의 조직생활이나 사회생활,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도 상당한 혼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약간의 희망을 가지는 것은 홀이 남긴 한 마디 때문이다. “M-타임이란 인간이 가진 본래적 성질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내 본성대로라면 M-타임은 아무래도 체득하고 싶지 않지만, 그에서 파생된 행동들이 후천적으로 체득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행동들은 나도 조금은 배워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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