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교수
(독어독문학과)

학교에서나 방학이면 가 있는 독일 연구소에서나 밤을 새는 일이 잦다. 그러다 보니 청소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분들 출근이 빨라서이다. 서울에서는 대여섯 시쯤인데, 독일에서는 새벽 세 시, 아무리 늦어도 네 시에는 일이 시작된다.

매일 캄캄할 때 출근해야 하는 직업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차라도 한 잔 끓여서 대접하고 싶지만, 피차에 그럴 여유는 없다. 새벽쯤이면 나는 지쳐 있고, 그분들은 일부터 얼른 마쳐야 한다. 그래서 그저 오가는 길에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한번은 거구의 가나 남자분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자신이 독일에서 일을 하여 가나에서 부인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을 확장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보수가 보잘 것 없는 일이겠지만, 그 일 덕분에 가나에서는 나름으로 유복한 터라 자긍심이 있었다. 독일어도 제법 했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은, 돈은 그런대로 벌지만 ‘배움’이 없다면서, 고등연구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을 드러냈다. 그 후로 내가 밤을 새며 연구실에 머무는 것 같으면 내 방 앞은 그냥 지나치고, 내가 없는 날은 내 연구실 청소를 말끔하게 해놓고 가셨다.

또 언젠가는 독일 연구소를 청소하시던 독일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혼자서 건물 하나를 다 청소하자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유난히 안쓰러웠다. 귀를 기울이다가 청소가 끝나갈 때쯤, 부엌으로 가서 찻물을 얼른 끓여서 차를 한 잔 권해 본 적이 있다. 일이 아직 끝난 것 같지 않아 조심스러웠는데 고마워하며 마셨다. 건강도 형편도 어려워 보였다. 차를 다 마시더니 사과 하나를 내게 주었다. 전날 밤 행사를 마친 직원들이 두고 간 것이라 했다. 사양했지만 굳이 건넸다. 그다음에는 나도 가끔씩 청소가 한참 진행 되었다 싶을 때면 부엌으로 가서 차를 두 잔 타서, (시간 빼앗지 않고) 한 잔은 거기 두고 오면서 복도에서 엇갈릴 때 내 찻잔을 들어보이곤 했다. 청소가 끝난 후 부엌에 가보면 과자를 담은 작은 접시가 가끔 놓여 있었다. 내게는 그분이 안쓰러운데, 그분 눈에는 걸핏하면 밤을 새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그분들에게 무얼 좀 도와드리는 시늉을 하면 “고맙다”는 말 다음에 덧붙인다. “괜찮아요. 이건 내 일이예요.” 내 일, meine Arbeit 혹은 my job. 독일 어디서든 자주 듣고, 감탄하는 말이다. 세상의 일은 다 어렵게 마련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면서도, 목전의 목표에만 급급하거나 심지어 죽지 못해서 한다고 생각하며 일을 하는 것과 ‘이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일의 성과도 다르겠지만 일하는 사람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현실인식과 책임감과 자긍심까지 배어 있어 내가 좋아하는 그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일이 너무 힘들다보니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드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일조차 못할 상황에 아직 가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짐작되는 것이, 내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경우 역시 새벽에 일하러 나오신 분들로부터였다. 조금 도와드리려 하면 황급히 사양을 하면서 그러셨다. “제 일인걸요.” 독일에서와 달리 그 말을 들으면 반갑기에 앞서 먼저 마음이 짠하다. 참 고생 많이 하셨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말이, 그 힘든 일도 못 했던 상황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서이다. 학교에서는 대개 그저 눈인사나 건너고 말 뿐이지만, 그분들이 누구보다 가까운 동료로 느껴진다. 그분들에게서 내가 배운 아름다운 말 한 마디 - “제 일인걸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면서 해 보니 무슨 일이든 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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