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돌봄노동자의 위기를 진단하다 

전국적으로 돌봄노동자가 48만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돌봄노동자의 처우는 열악하다. 『대학신문』은 돌봄노동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종사하고 있는 간병인, 재가 요양보호사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돌봄노동자의 근무실태를 살펴봤다. 

최씨는 지방의 한 사립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 24시간 환자의 곁에서 식사를 돕고 화장실을 함께 다녀오며 환자의 손발이 돼준다. 환자의 자세를 변경하거나 대소변을 받고 밤새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 의료진에 보고하는 일 역시 그의 업무다. 의사, 간호사보다도 많은 일을 하면서도 24시간 내내 환자의 곁을 지키고 그가 받는 돈은 6만5천원 남짓이다. 시간당 임금을 계산하면 2,700원 꼴인데 최저시급 4,860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그나마 이 돈이라도 꾸준히 받는다면 다행이다. 환자가 퇴원하게 되면 다음 환자를 받을 때 까지 일을 하지 못한다. 

간병일을 하는 것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데다가 두 시간마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야해 피로가 가실 날이 없다. 하루에 6~7만원을 받는 최씨가 하루 세 끼를 밖에서 사먹기는 어렵다보니 끼니를 정상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래서 최씨는 집에 갈 때면 일주일치 밥을 비닐봉투에 담아 얼려두었다가 그걸 녹여 끼니를 해결한다. 

지난해에는 같이 일하던 동료가 한동안 일을 쉬었다. 간병하던 환자에게서 병이 옮은 것이다. 병원이 실질적으로 고용주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병원 측에 검사와 치료를 요청했지만 병원은 정식 직원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오히려 병원은 환자 측과 직접 맺은 계약이니 환자의 보호자에게 이야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간병인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동료는 누구에게도 보상받지 못한 채 한 달간 간병인 일을 그만둬야 했다. 

김씨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한다. 노인을 돌보는 것이 김씨의 일이지만 실제로는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맡아서 한다. 부당한 요구에 항의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이런 일을 거부하려면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 

김씨가 받는 시급은 6천원으로 의료기관 간병인보다는 높은 편이다. 그러나 노인 한명을 돌봤을 때 노동시간은 하루 3~4시간 정도로 노동시간이 짧아 수입은 60만원 남짓이다.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 12시간 혹은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은 모두 단절된다. 심지어 김씨는 지난 명절에도 쉬지 못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들이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다 보면 1년을 못가 대부분 그만둔다. 자기 몸보다도 무거운 환자를 옮기다 보니 허리나 관절에 병 하나씩은 달게 되기 때문이다. 환자나 가족들이 대놓고 무시를 하면 모욕감에 울컥하기도 하지만 김씨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차마 요양보호사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양육, 보육, 가사노동, 간병 등 가족구성원을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가정 내에서 해결됐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진출 등에 따른 가족기능의 변화로 인해 고령자 및 장애인에 대한 돌봄서비스의 수요가 대폭 증가했다. 반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당연시되며 가정 내에서의 돌봄능력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더욱이 저출산·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며 가정 밖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돌봄노동’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돌봄노동은 보통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 즉 노인, 영유아, 장애인 병자 등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을 가능하도록 돕는 노동으로 정의된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돌봄노동자는 약 48만명으로 추정되며 그 중 절반 이상인 30만명 정도가 민간부문을 통해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돌봄노동자들은 대표적으로 의료기관 간병인, 재가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보육시설 교사 등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돌봄노동 종사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다. 

이들은 높은 노동강도, 과도한 근무시간, 낮은 임금, 감정노동 등에 시달리며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6년 돌봄노동자 근로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67%의 간병인들이 환자를 들거나 부축하는 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한달에 한번 이상 병원을 찾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폭언이나 성희롱 등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사례도 있었다. 대부분의 간병인은 24시간 병원에 상주하며 근무하고 재가 요양보호사 역시 평균적으로 12시간 가량 근무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돌봄노동자는 2,500원에서 6,000원의 시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최저시급을 받는 경우도 담당할 환자가 없는 경우엔 짧게는 사나흘에서 몇 주까지 일을 할 수 없어 한달 수입이 70~80만원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여성정책원 가족·다문화정책센터 홍승아 센터장은 “돌봄서비스 인력은 증가하고 있지만 법·제도의 미비로 그들에 대한 보호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노동하고 있는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48만 명이 넘는 4~50대 여성들이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고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상황 때문이다.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대다수가 남편의 수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 부족하거나 여성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에 40~50대 여성에 대한 수요는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돌봄노동으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돌봄노동자 

돌봄이 노동의 영역으로 편승함에 따라 돌봄노동, 돌봄일자리, 돌봄도우미 등의 용어를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돌봄서비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지는 오래다. 그러나 돌봄노동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노동’으로 충분히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돌봄이 노동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에 강하게 박혀있는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다. 여성들이 기존에 돌봄을 행해왔기에 지금까지도 돌봄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기존 대부분의 노동이 구체적인 상품이나 생산물을 만드는 데 비해 돌봄노동은 사람 사이의 인간적 접촉, 상호작용 등의 가시화되지 않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비물질노동인 점도 돌봄을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거론된다.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돌봄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재가 요양보호사·가사도우미나 장애인 활동보조사 심지어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병인조차도 가사노동자로 분류되지만 근로기준법 제11조에서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3년의 사회상을 반영해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가사노동자의 개별 근로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당 내용이 개정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노동자 보호를 위한 대부분의 법률 역시 근로기준법을 토대로 만들어져 가사사용인을 노동자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마저도 돌봄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심선혜 부지부장은 “돌봄서비스 정책이 이용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돼 공급자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다뤄지지 못했다”며 서비스 이용자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정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학계도 2004년 이후 바우처 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돼 노인돌봄에 있어 상당한 발전이 이뤄졌고 아동보육서비스의 지원 규모도 확대됐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논의가 서비스 제공방식과 서비스 이용자 중심으로 이뤄진 점은 문제라고 해석한다. 특히 정부가 돌봄서비스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돌봄서비스의 시장화를 추구한 점은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을 크게 해치고 돌봄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평가된다. 정부는 돌봄서비스 시장을 만들어 서비스 공급자가 경쟁하고 수요자가 상품을 선택해 구매하도록 했지만 이 과정에서 누구든 신고를 통해 요양기관을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과도하게 많은 공급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예측 실패는 궁극적으로 일선 돌봄노동자들에게 전가됐고 그들의 삶의 조건을 열악하게 만든 것이다. 


진정한 ‘돌봄노동 사회화’를 위해 

돌봄노동자가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받지는 못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엄연히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노동자다. 따라서 이들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근로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노동 사회화’의 방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에 여성에게만 부담됐던 돌봄을 여성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해결하자는 것이다. 

여성계와 노동계는 돌봄노동 사회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관련법 개정 및 제정을 제시한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돌봄노동자를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고 기존에 노동자들이 보장받고 있는 최저임금, 노동시간 보장, 고용·산재보험 등을 기존 노동자와 동등하게 적용할 때 돌봄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돌봄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도 이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에 여성들이 당연히 행해오는 것으로 여겨지며 하찮고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돼온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홍 센터장은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이뤄진다면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는 다시 저임금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돌봄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일이라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돌봄서비스의 공공성 확보와 사회적 책임 강화의 필요성도 돌봄노동 사회화의 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아동보육시설의 5.7%만이 국공립 시설로 구성되어 있는 등 지나치게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의 돌봄서비스 시스템으로는 돌봄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간시설은 서비스 제공의 중간과정에서 이윤 추구가 일어나 국공립·비영리시설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그 이유다. 심 부지부장은 “서비스는 공적인 내용인데 전달 체계는 민간시장을 통해 전달이 되고 있다”며 “돌봄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더라도 보육원이나 관련 기관을 사유화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질적 향상이 일어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그는 “모든 시설을 국공립·비영리시설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적어도 30% 이상은 국공립 기관으로 전환해 상호견제와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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