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거대한 문화적 전환이었다. 비단 문화뿐만 아니라 지적·도덕적·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를 야기한 변화의 원인들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르네상스의 촉매제가 된 중대한 사건이 기원전 1세기에 쓰인 고서(古書)의 발견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1417년, 근대의 탄생』의 저자 스티븐 그린블랫은 “1417년 한 ‘책 수집꾼’이 고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사건이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전했다.

저자는 우연히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은 뒤 그 책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런 궤적이 담긴 『1417년, 근대의 탄생』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집필되고부터 후대에 발굴되는 과정과 그 이후 파장을 일으키는 과정으로 나뉘어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나가는 저자의 역동적인 필체와 풍부한 역사적 사고는 호평을 받았으며 이 책은 2012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선 저자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집필과정을 서술하면서 그 책이 에피쿠로스 철학을 담고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저자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원자론에 기반한 그 책은 무신론을 내포했다”고 말하며 ‘우주에는 창조자가 없으며 우주가 무한한 진공 속에 존재하는 원자들의 충돌로 형성됐다’는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 이는 곧 사후세계에 대한 불신과 현세에서의 쾌락 추구로 이어진다. 이렇듯 당시로서는 불경스러운 내용 때문에 그 책은 밀라노칙령 이후 오랫동안 묻혀있다가 1417년 포조 브리촐리니라는 ‘책 수집꾼’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저자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발견이 중세 교회의 탄압 속에서도 ‘근대성의 씨앗’을 곳곳에 발아시키는 과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작은 원자들의 무리’라는 문구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밖에 저자는 “몽테뉴, 마키아벨리,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루크레티우스의 책을 통해 에피쿠로스 철학을 접하고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갔다”고 전한다.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변화가 ‘한 외딴 장소의 벽 뒤에 처박혀’ 있다가 우연히 발견된 고서에서 비롯됐다는 관점은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르네상스를 촉발했던 무수한 촉매제들이 천년의 먼지가 쌓인 고서처럼 또 어딘가에 잠들어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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