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에는 세상에 대한 소식들로 가득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클릭하지만 간혹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미모의 oo녀가 알고보니 XX”라는 기사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런 ‘낚시’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예전 스포츠 신문의 1면에는 “충격! 탑 스타 열애”라는 특종이 크게 나오곤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드라마에서” 라고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스포츠 신문에 빠지지 않는 코너가 스타들의 뒷담화였 다. A가 B를 만나고, C는 D와 헤어졌다는 얘기들.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증권가 찌라시’는 전설적 무공 비급처럼 동경의 대상이었다.


최근 ‘증권가 찌라시’는 예전과 달리 명실상부하게 전국민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A가누구인지 애탈 필요가 없다. 스타의 일상에 대해 동네친구처럼 시시콜콜 알 수 있다. 정부의 고위층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이제 높은 분의 ‘그녀’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누구나 은밀한 소식들을 알고 있는 세상, 가히 정보가 ‘민주화된’ 시대다.


증권가 찌라시는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다. 특정 한 관점으로 정보들을 선택하고 또 창조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그리고 그 앎이 나의 호기심을 해소시킨다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검증과 고민을 재미가 대체 하는것.그렇게 우리는 스포츠 신문 고유의 존재 의의가 사라져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찌라시 전성시대는 인터넷을 넘어 TV로 확산되고 있다. 종편 방송은 언론과 찌라시의 구분이 고리타분한 것 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와 ‘평론가’들 덕분에 뉴스는 더이상 어렵거나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에 대한 다양한 품평들은 재미날 뿐만 아니라,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이 우리네랑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오고가던 이야기가 방송에서 흘러나오고, 시청자들은 자신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임에 만족한다. 세상은 역시나 자신이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5·18은 빨갱이는 기본이고 북한군이 개입한게 틀림없었다. 북한의 행동은 김정은이 어려서 뭘 모르고 땡깡을 부리는 거다. 민주니 정의니 얘기를 하는 이들도 결국 자신의 잇속 차리기에 불과하다.


방송에 나오는 수많은 말들 속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주장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근거가 무엇 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 없다. TV가말하는것은곧내 가 생각하는 바이며, 당연히 그것은 진실 이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익숙한 논리로 설명되는 순간, 당연한 것들을 어렵게 말하고 다르게 말하는 것들은 이해받지 못한다. 그 낯선 존재들은 희화화되거나 괴물이 되고, 조롱이나 분노의 대상이 되고 만다.


애드가 앨런 포의 추리 소설 『도둑 맞은 편지』에서, 범인은 비밀 문서를 편지함에 넣어둔다. 무언가를 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한 것들 사이에 그저 놓아두는 것이다. 팩트와 의견,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모든 정보들은 동등한 가치를 부여 받는다. 호기심을 충족한 사람들에게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은 더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렇게 개구리는 끓는 물 속에서 평화롭게 잠을 잔다.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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