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총장과의 대화가 열렸다. 관악여성모임연대(관악여모)에서는 그동안 고민해 온 교수 성폭력 관련 요구안을 작성, 면담에 참석했다. 이를 통해 강의 평가에 성폭력 항목을 추가하고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신고가 학내 성폭력 상담소에 바로 접수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계 역시 드러났던 자리였다. 정운찬 총장은 서울대학교에 들어올 정도의 구성원들이면 ‘그런 문제’는 개인들이 알아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 면담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이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구조적겭英맛?맥락을 무시하는 것이며 성폭력은 개인의 사적인 문제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교수 성폭력을 단지 몇몇 교수들의 문제로만 여긴다면 이는 제도적ㆍ정책적사건 해결과 피해자 지원, 예방 의지를 기대할 수 없도록 한다.

또한 성폭력 예방 교육에 있어 규제까지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대학 당국의 말은 지금 학내에서 예방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말이라 할 수 있다. 단지 형식적인 숫자로, 일정 수의 교직원이 예방 교육을 이수했다는 사실이 대학 당국의 책임을 줄여주지는 않는다. 이에 실질적으로 ‘예방’이라 할 수 있을만한 컨텐츠를 개발하고, 의무적으로 강제하며, 만약 계속해서 예방 교육을 받지 않는 교수나 강사가 있다면 규제를 가해야 한다. 규제는 성폭력 예방 교육을 무용지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총장과의 대화가 단지 면담 몇 십 분에 오갔던 대화가 전부가 아니라 이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면 면담 때의 발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강의실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적ㆍ환경적 성폭력은 여성의 정체성과 학습권을 명백히 침해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총장과의 대화를 계기로 다음 학기부터라도 강의 평가에 성폭력 관련 항목을 넣고, 그 결과를 교원 심사와 재임용 결정에 반영하게 된다면, 이는 학내 구성원들에게 교수 성폭력에 대한 대학 당국의 해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면담 한 번에 그치지 않는 지속적인 대학 당국의 실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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