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애 강사(국어국문학과)

전공과 관련하여 연극을 보러 다닌 지 벌써 십여년이 다 되어간다. 많게는 일주일에 서너 편씩, 적어도 한 달에 두세 편씩 연극을 보다보니 벌써 그 숫자도 꽤 된다. 워낙 극 장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대학원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희곡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연극을 보러가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연극을 보는 경험이 쌓이게 되니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접근한 연극성이나 공연 미학이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한 감각이 몸에 붙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극장에 있으면 머리가 마음과 몸과 함께 작동한다는 느낌이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연극계 외부의 내부자인 비평가의 위치에서 연극을 보게 되니 그 총체적인 느낌에 대해 글로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고민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과연 언어는 이 비언어적인 느낌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매체일까.


강의를 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강의 경력이 늘어날수록 처음의 긴장감 대신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의 준비를 성실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강의가 완성되는 순간은 교수자가 준비된 지식을 전달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생들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그 때일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이론적인 부분을 전달하고 혼자 뿌듯해 하는 것은 배우가 캐릭터에 과도하게 몰입한 상태에서 감정을 강요하는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강의를 하면서 마주친 곤혹스러운 순간들을 생각하면 내가 그동안 학생들을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아마 학생들도 그러할 것이다. 학생들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양만 보아도 강의를 많이 듣고 어느 정도 수업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학생인지 아닌지 짐작할 수 있고 학생들의 표정이나 눈빛에서도 강의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연극을 보는 경험과 강의실에서의 경험을 곧바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말로 다 포착할 수 없는 교감이 강의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이 지식만을 얻기 위해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고 교수자도 지식만을 전달하기 위해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무대 위의 배우가 된 것처럼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느낌을 좋아하게 될 때가 있다. 숙련된 훌륭한 연기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때로 무대 위에서 상호작용하는 배우들처럼 서로를 관찰하고 말을 주고받고 제대로 소통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훈련일 뿐이고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연극에 대해 쓰면 쓸수록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잉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진다. 사실은 강의도 마찬가지다. 어떤 강의에 대해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다음에는 재연될 수 없는 그 순간에만 공유되는 어떤 비밀스러운 즐거움이 함께 들어있다는 뜻은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사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무대와 객석 사이처럼 학생들과 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우리는 가끔 거기에서 만나지만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가 없었더라면 학생이 학생인 것을 즐거워하고 내가 학생이 아닌 것을 다행스러워할 자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더욱 다행스러운 일은 이 글을 쓰는 내가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양근애 강사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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