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 대법관·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김영란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사람 이름을 딴 법안은 흔치 않다. 그런데 최근 한 사람의 이름을 딴 법안이 일간지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법무부의 반대로 누더기 법안이 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소위 ‘김영란법’이 그것이다. ‘김영란법’의 주인공인 김영란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기도 하다. 대법관 임기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했던 김 교수는 이후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위원장직을 맡아 부정한 청탁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김영란법)’을 고안했다. 『대학신문』은 현재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김영란 교수를 만나 법관으로서, 행정부 기관장으로서, 공직자로서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원칙과 소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봤다.
 

◇김영란, 그녀는 누구인가

경기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영란 교수는 대학교 3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관의 길을 걸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법 부장판사,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김 교수는 2004년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대법관 활동 중에는 여성이나 아동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을 위한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사히 대법관 임기를 마친 김 교수는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 다시 한 번 사회를 놀라게 했다. 이후 학교로 돌아온 김 교수는 2011년 권익위원장직을 맡아 직무관련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규제하는 ‘김영란법’을 입법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대선 후보로 출마하게 되자 장관급 공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사퇴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김 교수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1978년만 해도 여성 검사는 아예 없었으며, 여성 판사 역시 많지 않았다. 그 당시는 “사법고시에 여자 합격자가 나오면 일간지 사회면 톱기사로 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여자를 경쟁의 상대로 보지만 그 때는 경쟁 상대가 아닌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었다는 김 교수는 “보호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으면 사회 부적응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수인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원하지 않는 모습은 감춰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또 여성 법관으로서 김 교수는 “당시는 일을 못하면 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여성이라는 집단 전체의 문제가 돼버렸다”며 “‘여자라서 일을 못하는구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일이 항상 최우선이었다”고 회고했다. 전체 여성 집단의 책임을 다 지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김 교수는 실제로 주말에까지 아이들을 사무실로 데려와 앉혀놓고 자신은 일하기에 바빴다고 기억했다.
  
김 전 대법관은 여자 판사들이 집안일과 재판 업무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남성 위주의 문화에서 소외되거나 조직에서의 능력 배양도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2010년 세계여성법관회의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일과 가정을 함께 책임지는 여성 법관들이 조직 내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고 느끼는 것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행사의 의미를 평가했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 그녀가 고민했던 사법의 역할
 
김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서 많은 소수의견을 냈다. 참여연대는 김 전 대법관의 주요 판결을 바탕으로 발간한 이슈리포트에서 “여성·아동·청소년·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하려는 노력을 보여줬고 환경권, 노동권, 피고인의 방어권, 불치병 환자의 자기결정권 등 국민의 여타 기본권 보호에도 강조점을 두는 판결을 남겼다”고 평가한 바 있다. “대법관 성향의 다양화를 통한 균형 갖춘 대법원을 만드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는 평가에 김 전 대법관은 소수의견‘만’ 많이 냈던 것은 아니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도 소수의견을 내는 것이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다수결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선출된 대표를 내지 못한 소수자 집단은 생기게 마련”이라며 “이들을 동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들이 그들만의 문화나 사유를 바탕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여러 모티브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집단으로서 자리할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소수자 집단을 동화하는 것은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이들을 오히려 사회 변화를 추구할 동력으로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소수자만을 위한 판결은 있을 수 없지만 다수의 이익을 위해 보호해야 할 소수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사회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김 교수의 생각에 ‘사법부의 정치화’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사법부가 아무리 정치적 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원천적으로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는 판단을 할 수는 없다”며 “실제로 사회는 변화하는데 사법부가 변화를 예민하게 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이므로 정치적 생각을 가지고 판결한다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김 교수는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의 개념을 언급했다. “정치적 문제에 대해 사법부가 언급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법으로 규율돼야 할 사항에 관해 법이 존재하지 않는 ‘법의 흠결’이 발견된 경우 이를 판결하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입법의 흠결에 대해 사법부가 판결할 수는 없고 입법과 사법의 경계에 있는 경우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적극주의가 될 수도, 소극주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자의 호적 정정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한 나라도 있고 사법으로 해결한 나라도 있다. 당시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호적 정정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소수의견은 성별을 바꾼 것을 정정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오래 걸릴 입법의 과정 동안 당사자가 입을 인격권 침해나 피해의 문제,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입법만을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법소극주의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 사진: 신선혜 사진부장 sunhie4@snu.kr
 
 
◇청렴하고 부패 없는 사회를 위해
 
김 교수는 대법관 퇴임 당시 다시 한 번 모두의 이목을 끄는데, 전임자였던 조무제 전 대법관이 그랬듯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제가 좀 화제가 되긴 했는데 저만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웃어넘기며 “비싼 수임료를 받으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데 남은 인생은 다른 창의적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고 변호사 개업을 포기한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김 교수의 행보에 대해 한 일간지에서는 ‘100억’을 포기했다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그녀는 “대법관, 더 나아가 판사직을 하고 나면 변호사는 안 하는 시대가 와야할 것”이라며 전관예우가 만연한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녀가 또다시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이유는 권익위원장 시절 입안하고자 했던, 소위 ‘김영란법’ 때문이다. 그간 법무부의 반대로 입안되지 못했던 이 법안은 최근 법무부와 권익위 간의 논의 끝에 합의안이 도출됐다. 그러나 합의안은 원안의 취지를 그대로 살리지 못하고 ‘누더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이에 일부 의원들은 원안을 의원 입법으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법안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권익위는 △국가청렴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가 통합된 기관으로 국내 반부패위원회로서 최고 기관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눈에 보이는 부패는 많이 줄었다”며 “남은 문제는 연고관계에 의한 봐주기인데 이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고 입법의 취지를 밝혔다. 김 교수가 생각한 해결책은 바로 ‘강력한 규제’다. 법안의 원안에 따르면 직무관련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공직자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금품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스폰서’를 막자는 것이 기본적인 이 법의 취지다.
  
이에 법무부는 △이미 형법상 처벌 근거가 존재하고 △과잉 규제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공무원과 일반인을 차별하는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강력한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규제 입법이나, 새로운 규제 창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는 듯하다”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서 법안의 제정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김 교수는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와 함께 펴낸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부패와 청탁에 관련한 법안을 입법하고자 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제 문제의식은, 착한 사람들도 발을 조금만 젖게 하면 금방 온몸을 다 적시게 된다는 데에서 출발했어요. 그것을 못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발이 젖는 거예요. … 그래서 저는 판사시절 초기부터,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못 받도록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김 교수는 법안의 취지와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이미 권익위를 떠났는데 법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기를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운을 뗀 김 교수는 “자존심은 강한데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해 생각하게 되고 자존감은 더 낮아지며 자존심은 충족 안 돼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청춘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또 김 교수는 “후배 판사들에게는 어떻게 판결해야 할지 모를 때 원칙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후회가 적다”고 말해왔다며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면 원칙을 지켰을 때 오는 어려움은 지키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일들보다는 그래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법조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는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굉장히 크지만 “법률가의 본질이 무엇이고 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왜 자기가 법률가가 되려하는지 늘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또 김 교수는 “대법관이 되겠다, 돈을 잘 버는 법률가가 되겠다 등의 막연한 꿈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법률가 상을 정립해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 이문원 편집장 moonwon@snu.kr           글: 정진욱 부편집장 jjo52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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