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아이가 울고 있다. 소녀의 부모는 툭하면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남편에게 맞아 절뚝이던 아내는 결국 삽으로 그를 살해한다. 시선을 돌려보자. 저기 한 남자가 앉아있다. ‘지겨워서 회사를 그만둔’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한 소년을, 식당 주인을 그리고 그를 비난하는 부모님을 죽인다. 모두 김사과의 단편소설집 『영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권태로워서’ 누군가를 살해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분석일까. 권태라는 심리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철학적, 미디어 이론적 분석을 실은 ‘몸문화연구소’의 『권태』에서는 이런 설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쓴 9명의 필진은 권태의 정체와 효과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드러내 보인다. 그 중 한 명인 황혜진 교수(건국대 국문과)는 폭력의 원인으로서의 권태를 말한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심심한 누군가는 어느 순간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분노하게 되고 이를 폭력으로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크레이그 웨버 교수의 인터뷰에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무엇보다 “권태를 해소하고 흥분감을 느끼기 위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또 ‘KKK’의 제임스 크로우는 “단순히 즐기고 장난치고 사람들을 골려주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동기 설명이 그럴 듯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늘날 수면 위로 드러난 ‘왕따’ 문제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내지 집단이 누군가를 타자화 하는 정치적 과정에 권태라는 감정이 적극적으로 개입될 수 있는 것이다.

권태로움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이제 우리가 알아내야 하는 것은 권태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이 감정의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지이다. 이에 대해 이종주(철학과 강사)는 「지루함의 철학」 장에서 권태라는 복잡다단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하이데거의 분석을 끌어들인다. 그는 하이데거의 지루함은 ‘지루해짐’, ‘지루해함’, ‘그냥 아무튼 지루함’의 세 층위로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여기서 폭력적으로 발현되는 권태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앞의 두 ‘지루함’을 주목해야 한다.

먼저 ‘지루해짐’은 “특정 사물과 사람이 나의 욕구를 충족해주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곧바로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욕망의 실현이 지연된 그 시간적 간격은 나에게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지게 되며, 그 순간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 지루함, ‘지루해함’은 “내가 관여하고 있거나 참여하고 있는 활동, 상황 자체가 공허한 체험”이다. 이 감정의 특징은 이 활동 자체에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없이도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며 이 때의 불만족은 자신이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모르는 데서 형성된다. 이 지연된 욕망 내지는 거세된 욕망의 경험은 ‘좌절감’이란 단어로 설명 가능하다.

인간을 좌절시키는 원인은 개인의 문제로부터 구조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권태는 이제 사회와의 관련 하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김종갑 교수(건국대 영문과)가 「근대의 증상으로서 지루함」 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현대사회는 자극의 포화 상태다. 잘게 쪼개진 시간의 단위는 개인에게 더 많은 활동을 동시에 하라고 명령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개인은 더 많이 욕망할수록 ‘살아있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수많은 자극 속에서 욕망은 길을 잃고 현실적으로 해소될 수 없을 정도까지 확장된다. 이 충족될 수 없는 욕망에 에워싸인 개인은 더 많이 “지루해진”다. 또 욕망의 양적 팽창은 그 질적 체계를 세우기 어렵게끔 하고 개인은 활동에 ‘휩쓸리게’ 된다. 이렇게 자기가 하고 있는 활동이 자신의 욕망에 따른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로 개인은 “지루해한”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와 지금까지의 논의를 김사과의 소설에 투영시켜 보자. 욕망이 지연되었는지 혹은 거세되었는지 모를 소녀의 부모는 여하간 좌절된 상태이고 이들은 이 상태를 폭력으로 해소하려 한다. 또 한 명의 등장인물, 회사를 그만둔 살인자 남자는 “무서워서 회사가 지겨운 이유를 몰랐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공포는 자신의 활동이 자기가 아닌 다른 주체의 욕망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의 공포일 것이다. 자기가 투신한 활동이 자신의 욕망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 수 없는 공포심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 그것은 후기산업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권태』는 이처럼 사회로부터 돌출된 것 같이 보이는 이들의 정신구조가 결국 사회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이들의 권태와 ‘평범한 우리들’의 권태가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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