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망령’, ‘군국주의의 부활’. 연일 쏟아지는 망언들과 평화헌법 개정 논의 등 2차대전 시대로 돌아간 듯한 일본의 역사 인식을 우려하는 말이다. 이런 우려는 일종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광기에 찬 정신주의’였던 일본의 파시즘이 이미 사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완의 파시즘』의 저자 가타야마 모리히데는 그런 합의에 반문한다. 그가 생각하는 일본 파시즘은 광기가 아닌 냉정한 현실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그 파시즘은 패전과 상관없이 살아남아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불사른 가미카제 특공대, ‘국민총동원’을 표방하며 ‘여성의 월경 주기와 노동력의 관계’까지 조사한 보고서들, 이것이 광기가 아닐 수 있을까. 광기의 역사는 멀리 1차대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일본의 군대는 1차대전에서 너무나 많이 배웠기 때문에 극단적인 정신주의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군이 1차대전에서 배운 것은 ‘현대전의 이상(理想)’이었다. 1920년 전후 보고서 『대전 후의 세계와 일본』에는 “현대전은 물량전이다. 과학전이다. …(중략)… 아무리 용맹한 부대라도 대포의 큰 포탄 아래에서는 흔적도 없이 날려버린다”라고 기록돼있다. 일본군은 현대전이 ‘갖지 못한 나라’와 ‘가진 나라’ 간의 국력 싸움임을 알았고 일본이 ‘갖지 못한 나라’임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일본군이 ‘냉정한 관찰’에 의해,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논리에 입각해 분석한 상황은 바로 ‘일본필패’였다. 저자는 그 당시 일본이 직면한 딜레마를 포착하고는 “그때 비현실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 되고 현실주의는 어느 틈엔가 정신주의로 ‘반전’되는 것이다”고 말한다. 나름의 ‘냉정한’ 판단에 의해 비현실적인 정신주의가 하나뿐인 선택지로서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사실 1차대전 이후 여느 국가가 그런 딜레마와 불가피한 ‘반전’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일본의 절박한 정신주의가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판단의 결과였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게다가 일본은 1차대전부터 군국주의에 이르기까지 수십년 동안 ‘천황중심주의’ 등의 사상을 동원해 정신주의를 단련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정신주의가 조금 과장돼 미쳐 보이는 것도, 또 그럴수록 ‘냉정한’ 절박함이 배여있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완의 파시즘’이라는 말도 의미심장하다. 파시즘은 원폭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미완으로 그친 두 파시즘을 들려준다. 먼저 오바타 도시로의 정신주의 파시즘이 있다. 일견 비슷한 정신주의지만 “그는 밀교(密敎)와 현교(顯敎)를 구분할 줄 알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교’란 겉으로 주장하는 막무가내식 정신주의를 가리키고, ‘밀교’란 속으로 그 한계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즉, 오바타 도시로는 “일류국의 대군과 싸운다는 식의 비전은 버리고 있었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일본이 ‘가진 나라’가 될 때까지 정신주의로 시간을 벌고자 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파시즘으로 이시와라 겐지의 계획은 대놓고 일본을 ‘가진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을 가진 나라로 만들기까지 몇 십년간 장기적인 큰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의 파시즘은 70년대에 일본이 미국과 ‘최종전쟁’을 벌여 천황 중심의 세계국가인 ‘팔굉일우’를 건설할 것으로 예견했다.

오바타 도시로와 이시와라 겐지의 파시즘이 ‘미완’으로 그친 이유를 저자는 ‘메이지 헌법 체제’에서 찾는다. “천황 중심의 다원주의적 정치를 강조한 메이지 헌법 체제가 군대의 명확한 비전의 전개·실현을 저지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만일 그런 다원주의적 체제가 부재했다면 실패로 끝난 2차대전기의 파시즘보다 훨씬 더 치밀한 파시즘이 대두할 수 있었다는 말일까. 이는 당장 아베 내각이 우익화를 주도하며 평화헌법에까지 손대려는 상황을 생각할 때 섬뜩함을 불러일으킨다. ‘최종전쟁’의 꿈은 정말 수십년 전에 끝나버린 것일까. 일본은 원폭이라는 ‘갖지 못한 나라’의 설움을 기억하며 ‘팔굉일우’의 꿈을 더욱 키워온 것은 아닐까.

이제 일본은 명실상부 ‘가진 나라’다. 가미카제가 스스로를 불사르는 대신 무인폭격기를 충분히 보급할 수 있는 나라다. ‘현대전의 이상’을 저버리고 정신주의로 돌아설 이유가 없다. 오바타 도시로의 밀교에 따르면 “적국의 국력이 엇비슷하거나 열등할 때” 정신주의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가진 나라’의 정신주의로 무장한 군대, 일본은 정말로 ‘파시즘의 완성’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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