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가 저술 활동에 매진한 당시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은 그가 현실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카뮈는 모국인 알제리의 현실 고발과 정치사회적 진단과 분석을 20여 년 간 한 『알제 레퓌블리캥』의 베테랑 기자였다. 기자라는 공식적 위치에서 발언한 내용은 그의 사상이 구체적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비록 아랍계 알제리인이 아니라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이긴 했으나 알제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카뮈에게 그곳은 마음의 고향과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향에 대해 정치적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알제리의 독립문제였다. 카뮈가 처음 기자로서 발언하기 시작한 1930년대에는 유럽계 이민자들과 아랍계 알제리인들 간의 기득권 투쟁이 불거지던 때였다. 프랑스에 대한 수출에 의존하던 알제리 경제는 대공황을 맞아 흔들리고 있었으나 정부는 기득권을 쥔 유럽인들의 이해만을 대변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럽계 알제리인으로서 카뮈는 인종적 편견 없이 해결책을 내놓고자 한다. 

그가 『알제 레퓌블리캥』에서 주장한 요구사항은 궁극적으로 알제리와 프랑스 간의 연방정부 수립이었다. 카뮈는 프랑스의 폭력적인 식민정책이 알제리의 경제 파탄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정의’와 ‘시민권’ 개념을 들고 나섰다. 즉 그는 식민지 제국 프랑스의 윤리적 결함을 시인하고 알제리인들을 프랑스인들과 동등한 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독립을 둘러싼 유혈 투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알제리 민족주의의 폭력성을 인식한 카뮈의 대안으로 보인다. 

여기서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지도 예견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그의 해결책의 한계로서 자주 지적된다. 지배라는 식민주의자의 원리를 탈피하려 했으나 그의 논리가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이 식민주의를 유지하며 ‘일본인과의 동등한 시민권’만을 얻을 수 있었다면 두 민족이 평화롭게 화해할 수 있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알제리 독립문제에 대한 카뮈의 발언은 그의 사상과 현실 정치 사이의 간극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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