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주년, 휴전선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공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하지만 휴전선은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휴전선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맞붙어 남겨놓은,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산 흔적인 것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전 세계가 언제 그랬냐는 듯 탈냉전의 궤도에 올라있지만, 여전히 냉전체제의 부산물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냉전사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냉전사의 주역들로서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했다. 김일성이 소련의 사주를 받은 것과 미국의 애치슨 선언이 한국 전쟁의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과 『선택: 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은 냉전기 미·소 외교사의 처음과 끝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두 인물에 관한 책으로 냉전체제 당시 미국과 소련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은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인 2차대전 전후 시기 케넌의 강연록과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특히 이 책에는 케넌이 시카고대학에서 연설한 ‘찰스R. 윌그린 재단 강연’과 1947년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유명한 ‘X논문’이 수록돼있다. 시카고대학 강연록에서 케넌은 1898년 스페인전쟁부터 2차대전까지의 역사를 조망하며 외교정책들을 되돌아본다. 케넌이 과거를 평가하는 부분에서 그의 ‘봉쇄 정책’에 담긴 생각의 연원들을 알 수 있다. 그는 무분별한 자존심이나 즉흥적인 여론에 끌려가는 외교를 비판하며 그와 대비되는 ‘현실주의’ 외교를 구상한다. 이후 케넌은 소련에 외교관으로 머물면서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X논문을 통해 ‘봉쇄 정책’이라는 대소련 외교법을 정식으로 입안한다. 전면전을 부추기지도 않고 소련의 확장을 방치하지도 않는 국지적 봉쇄 전략을 통해 소련의 자멸을 기다리자는 내용의 X논문은 당시 대소련 외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었던 상황에서 큰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미어샤이머는 “냉전 초기에 케넌이 봉쇄에 관해 정확히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그 답이 ‘현실주의’라고 말한다. 케넌은 “우리의 국익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말하며 철저히 국익에 따른 현실주의적 외교를 펼치고자 했다. 그는 국익에 기반하지 않아 곤경에 처했던 외교사를 회고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강화한다. 이를테면 1차대전기에 고립주의를 지향하다가 참전 하루만에 전쟁을 외치는 ‘변덕스런’ 여론에 휘말린 외교는 과도한 희생을 수반했다는 것이다. X논문에서 대소련 외교를 구상할 때도 “우리는 소련을 유리창 너머로 볼 수밖에 없다”며 억측이나 감정적 대립의 지양과 신중한 외교를 주문했다.

이런 케넌의 외교는 ‘법률주의-도덕주의 접근법’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케넌은 “법률주의 관념과 도덕주의 관념의 불가피한 결합이 더 큰 결함”이라며 미국이 곧 선(善)이고 법이라는 식의 자기중심적 도덕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국가 사이의 문제에 옳고 그름의 개념을 개입시키면 다른 나라 국민에 대한 인식이 적대감이나 우월감이라는 망상으로 더럽혀진다”며 냉정하지 못한 외교를 경계했다.

한편 이러한 케넌의 비판, 나아가 현실주의 외교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시카고대학 강연 중 ‘미국과 동양’이라는 부분에서 케넌은 “우리 정부는 한국에서 일본의 우위가 확립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실주의 관점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는 동아시아 ‘세력 균형’의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었다. 자유주의 학파가 강조하는 국제법으로 맺어진 국가 간의 신의나 인권 개념 등은 케넌의 현실주의 사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결과적으로 냉전 50년 외교를 지배했으며 그의 봉쇄 정책은 한때 미중 관계 정립에도 논의된 바가 있는 등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이 미국의 냉전 정책을 설계한 사람의 사상을 보여준다면 『선택: 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은 소련의 마지막 냉전 정책을 지휘한 사람이자 냉전사를 끝낸 사람으로서 고르바초프의 삶과 사상을 다룬다. 더구나 이 책은 자서전으로 쓰여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사상뿐만 아니라 유년기를 비롯한 그의 전생에 걸친 이야기들을 생생히 들려준다.

고르바초프는 일생동안 ‘선택’의 순간들에 직면했다. 그는 “운명에 의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감당해야 했다”고 말한다. 선택의 순간들은 많았지만 그는 항상 같은 길,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택했다. 그 길에 관해선 아직까지 논쟁이 분분하다. 옛 소련권과 러시아에선 나라를 내어준 ‘배신자’, ‘매국노’로 지탄받고 서방권에선 냉전 종결과 평화를 일구어낸 지도자로 호평받는다. 이 책은 엇갈리는 평가들에 아랑곳않고 묵묵히 신념을 따라 걷는 고르바초프의 모습을 비춘다. 평생 그를 페레스트로이카로 이끈 신념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었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나라 건설의 핵심요소는 국민의 ‘자유화’였다. 그는 “국민이 자유를 누려야 경제도 활기를 띠고 사회도 안정될 것"이라 말한다.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으로 언론이 사회주의 체제 자체를 비판할 때도 그는 “그 과정은 자유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었다”고 반추한다.

후대의 평가뿐만 아니라 ‘선택’의 현장 내내 고르바초프는 대내외적 갈등에 시달렸다. 갈등 세력으로서 그려진 레이건과 옐친의 모습은 흥미롭다. 고르바초프는 국력 확보를 위해 군비감축을 추진하고 그것이 소련의 이익이자 세계의 이익이라고 생각했지만 레이건은 군비경쟁을 가열시키며 오히려 페레스트로이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는 옐친에 관해서도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기만했다”고 평한다. 이 책에서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지지부진한 개혁을 뒤엎었다는 시각과 달리 내내 고르바초프의 계획을 방해한 세력으로 그려진다.

어느새 역사 속 인물이 된 조지 케넌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그러나 그들이 치열한 냉전 속에서 펼쳤던 외교 정책의 기조가 한반도에서 여전히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책은 냉전사 사료로서만 머물지 않는다. 케넌이 무분별한 이데올로기적 공방을 지적했듯이 우리도 신중한 대북 외교를 펼칠 필요가 있고 고르바초프가 지휘했던 소련 해체기의 상황은 이후 북한의 변화기를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책을 통해 60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 냉전체제를 해소할 혜안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