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양한 중력을 가진다. 언제 이끌렸냐는듯 금세 떨어져나가는 사랑이 있는 반면 평생에 걸쳐 서로의 궤도를 도는 사랑이 있다. 저자 엘즈비에타 에팅거는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에서 몇 바이트의 데이터로 사랑의 행방이 선고받는 이 시대에 너무나 낯선 사랑의 모습을 소개한다. 교수와 제자로 만나 평생에 걸쳐 교제한 두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 간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하이데거와 아렌트가 나눈 내밀한 서신을 따라가며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됐는지 가감없이 설명한다. 

1924년 마부르크대학의 철학과 학생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하이데거의 강의를 듣게 된다. 당시 복잡한 사고 구조의 파편들을 수수께끼처럼 학생들에게 던져주고 조용히 물러나는 방식으로 많은 학생들을 매혹시킨 하이데거.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수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아렌트만이 그의 눈길을 끌었고 수 차례의 서신 교환 끝에 둘은 독일사회의 엄격한 관습을 피해 밀애를 시작한다. 이들은 사적으로 만날 때도 마치 ‘장인과 도제로서’ 대화하듯 하이데거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압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게 일 년 여의 연애 기간 이후 하이데거는 아렌트와의 관계가 탄로날 것을 우려해 그녀를 다른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설득한 뒤 이별을 통보한다. 이후 하이데거는 히틀러가 통치하던 제3제국 시기 동안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유대인 제자의 승진을 방해하는 등 반인륜적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고 자신의 모든 명예와 직위가 박탈되자 그가 배신했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와 전 연인 아렌트에게 옛 정으로 호소하기 시작한다.

당시 파시즘을 공격하는 논지의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렌트는 그렇게 하이데거와 재회하게 된다. 주로 하이데거의 자기 변명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아렌트는 “진정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평가하며 나아가 하이데거의 충실한 변호인으로 나선다. 1966년 2월 일간지 「슈피겔」에서 야스퍼스가 하이데거의 나치 행적을 비판하자 아렌트가 그에게 “하이데거를 평화롭게 내버려두어야 해요”라고 편지를 보낸 것은 이를 잘 드러낸다.

이렇게 결국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아버지이자 권위적인 연인으로, 또 정신적 구조의 형성에 큰 족적을 남긴 장인으로 끝까지 숭배할 대상이었다. 냉철한 시선으로 전체주의를 해부한 철학자로 하여금 눈 앞에 보이는 전범을 변호하게 한 불가사의한 동력. 저자는 그것을 ‘사랑’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는 “아렌트는 윤리와 도덕과 같은 주제에 진지하게 천착한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에 관한 한 실패한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거의 하이데거와 아렌트 간의 서신으로만 채워진 이 책을 통해 위대한 윤리학적 이론마저 전복시키는 사랑의 자기기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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