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중재위원회 서옥식 중재위원 동양사학과 73년도 졸업
서울대 개교 원년 찾기를 주도해온 총동창회가 모교와 함께 2015년의 ‘개학 120년’을 맞아 새로운 교사 출간 등 기념사업을 계획하는 가운데 ‘개학년도 1895년’이 고증되지 않은 허위라고 주장하는 사회대 모 교수의 칼럼이 『대학신문』(2013년 4월 8일자)에 실렸다. 대한제국시절인 1895년에 설립된 법관양성소가 서울대의 시발점으로 근거가 없다는 이 칼럼이 오히려 역사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장이란 것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1946년 8월 22일 미군정이 공포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은 경성 경제·치과·법학·의학·광산·공업전문학교, 경성 사범·여자사범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및 경성대학(경성제국대학 후신,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16일 명칭 변경) 등 기존 10개 학교를 ‘국립서울대학교’로 통합해 공대, 법대 등 9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둔다고 했다. 동 법령 제5조는 오늘날 각 단과대학으로 발전된 기존 10개 고등교육기관을 열거한 다음 <이 모든 학교는 폐지되며 국립서울대학교에 흡수된다>며 소속 기관의 재산, 설비, 문서, 자금 및 인원(교직원과 학생)은 국립서울대학교에 이관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서울대는 새로운 대학교의 ‘신설’이 아니라 종합대를 만들기 위해 기존 10개 학교를 하나로 통합, 개편하고 거기에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모교 원년 찾기 팀은 이 9개 단과대학의 연원을 찾아 경성법학전문학교의 기원인 법관양성소가 가장 빠른 1895년 5월 6일 개교로 확인돼 ‘개학 1895년’이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고종황제 칙령으로 공포된 ‘법관양성소규정’과 ‘한성사범학교관제’ 등 개교 원년 관련 주요 20여 자료를 깊이 있게 분석한 결과였다. 다만 미군정 법령으로 1946년 당시의 기존 국립(왕립)고등교육기관 등이 통합돼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점을 감안, ‘개학(開學) 1895년 통합 개교(統合 開校) 1946년’이라는 슬로건을 갖게 된 것이다. 대학의 기능이 연구(학문과 진리 탐구)와 교육(인재양성)이라고 할 때 근대적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국가운영에 가장 필요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법관양성소는 해방 후의 서울대의 정체성(대표적인 국립고등교육기관)이나 설립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토록 중요하고 당당한 문제가 방치돼온 원인은 ‘경성제국대학’이란 이름을 서울대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구한말의 자주적인 9개 고등교육기관까지 모교 역사에서 모조리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따라서 모교의 원년을 1895년으로 한 것은 경성제대에 대한 거부감을 이유로 우리 스스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내팽개친, 왜곡된 모교 역사를 바로잡은 것이다. 경성제대를 이어받은 경성대학은 국립서울대로 통합한 10개 고등교육기관, 즉 10개 뿌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미군정 스스로도 기존의 전문학교들을 흡수해 종합대학교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는데도 이전의 역사와 전통을 스스로 버리는 것은 자학적인 역사관이다. 공대, 농생대, 법대, 사대, 경영대(상대), 의대, 간호대 등 대부분 단과대학들의 뿌리가 모두 백년을 넘고 매년 기념행사도 하고 있는데 이들의 종합체인 모교의 역사가 60여 년밖에 안 된다면 이는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이다.
 
모교 개교 원년 조정은 2008년 33만 총동창회의 이름으로 ‘서울대 개교 원년 찾기’ 운동이 시작된 이래 광범위한 사료 발굴과 검증을 거쳐 확정된 사안이다. 이태 국사학과 명예교수(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를 중심으로 연구팀이 구성돼 283쪽에 달하는 ‘국립서울대학교 개교 원년 재조정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나왔고 이를 토대로 ‘정통과 정체성-서울대학교 개교 원년, 왜 바로 세워야 하는가’라는 책이 7천여 부 발간·배포됐다. 총동창회보를 통한 지상 찬반토론, 총동창회 집행부와 동창회보 논설위원 간 토론, 단과대학 동창회장단-교수 초청 간담회·공청회 등 의견을 수렴했고 조정안은 2009년 3월 총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참석 동문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어 교수협의회 심의 및 학내 최고 의결기구인 평의원회의 만장일치 결의로 확정됐으며, 2010년 10월 14일 통합개교기념일 행사에서 오연천 총장이 공표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학의 원년을 정하는 데 세계적으로 공통된 기준은 없다. 어디까지나 대학 구성원의 합의와 선택의 문제다. 모교 원년 찾기 연구팀이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랭킹 50위내 주요 대학들의 원년을 조사한 결과 최초의 작은 기원을 종합대학 출범의 원년으로 삼거나 통합전 각 교육기관의 원년 중 가장 이른 시점을 개교 원년으로 삼는 경우 등이 46개교(92.2%)이며 종전의 서울대처럼 통합시점을 원년으로 삼는 대학은 영국의 임피리얼 칼리지 등 4개교에 불과했다. 1636년 교사 1명에 학생 9명으로 문을 연 하버드대가 목사양성소로 출발한 데 비하면 법관양성소는 설립 첫해에 50명이 입학해 47명이 졸업할 정도로 훌륭한 고등교육기관이었다. 국내에서는 광혜원이라는 의료기관 설립을 기원으로 하는 연세대(1885년), 교회 유치원 설립을 개교 원년으로 설정한 중앙대(1918년) 등 원년 기준이 다양하다. 이제 개교 원년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종식돼야 한다. 2025년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모교로서는 이런 논쟁에 휘말릴 겨를이 없다.
 
언론중재위원회 서옥식 중재위원
동양사학과 73년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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