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원(불어불문학과 석사과정)

개강은 공연의 계절이다. 사람들이 초안지를 들고 새 강의를 찾을 때 연극, 음악, 무용 동아리에서 여름을 보낸 사람들은 개강을 며칠 미루고 마지막 공연 연습에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학부 시절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꾸준히 활동한 덕에 이맘때면 적지 않게 공연 초대를 받는다. 안타까운 것은 공연 동아리들이 양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수준, 특히 작품의 다양성과 참여자들의 기본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느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연습과 공연이 힘들어질 이유는 많았다.

일부 학우들께 미안하지만 전환점은 2008~9년 사이로 보인다. 음악을 예로 들면 악기를 처음 접할 나이에 IMF를 겪은 세대가 대학에 들어왔고, 미국발 경제위기와 때마침 들어선 정권은 우리의 청춘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동시에, 잘만 살아남으면 성장의 단맛을 볼 것이라고 유혹했다. 학교는 제2전공과 상대평가를 의무화하고 등록금을 대폭 올려 청춘을 아프게 했다. 동아리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공연 기획과 단체 운영에 열정을 기울일 사람들은 점점 찾기 어렵게 되었다. 볼만한 학내 공연 대신 초안지, 재수강, 각종 선발과 지원 프로그램의 학점 커트라인이 무수히 늘어났으며, 어떤 사람들은 대학 안에까지 스며든 경쟁 시스템에서 한숨을 돌릴 틈이 사실상 없다고 상상하게 되었다.

학내 공연예술의 진흥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제도와 시설이 많이 있으며, 뜻있는 단체와 학우들, 행정기구 사이의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는 기반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며, 공연을 준비하는 분들을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공연을 할 만한 여유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학우들을 무대가 만들어지는 놀라운 장소로 초대하고 싶다.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조만간 공연에 서는 학우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 무대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공연에 서는 학우들께는 연습의 가치가 대학 시절 한두 번의 추억을 만드는 데 있지 않으며, 꾸준한 연습을 통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싶다. 스스로와 화해하기 쉽지 않을 때 악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미래의 성공과 현재의 즐거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악기는 현재에 충실한 것이 곧 미래를 준비하는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타인을 대하기 쉽지 않을 때 악기를 권하고 싶다. 홀로 싸울 때의 고독과 남을 만날 때의 교감은 연습 과정 속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악기는 정직한 물건이다. 우리는 작은 동작을 반복하고 그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바로 그렇게 우리 삶의 가능성이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을 본다. 악기는 멀리서 편지를 보내오는 연인과 같아 그것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상을 달리 보이게 하며, 조금 떨어져 있을 때에도 변치 않고 삶에 대한 믿음을 줄 것이다.

삶의 다른 기회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접어둔다면 악기를 배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우리 가까이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동아리들이다. 얼마 남지 않은 무더운 날에 무대에 서는 모든 학우들의 건승을 빈다.

김주원
불어불문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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