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수 교수(역사교육과)

대학 입시가 우리나라 중등교육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최근 역사교육 문제와 관련해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 방안이 제기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정작 역사교육의 한 축을 지탱해야 할 세계사 교육 문제는 배제되고 있다.

수능 지원 현황을 통해 중등교육에서 세계사 교육이 이루어지는 실상을 한번 살펴보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3학년도 수능 응시현황 자료에 따르면, 문과 지원생에게 적용되는 사회 탐구영역을 택한 수험생은 341,931명이다. 11개 사회탐구과목의 선택 비율을 내림차순으로 나열하면, 사회문화 221,473명(35.6%), 한국지리 172,165명(27.7%), 한국근현대사 158,269명(25.5%), 윤리 150,657명(24.2%), 정치 82,766명(13.3%), 국사 43,918명(7.1%), 법과사회 39,032명(6.3%), 세계지리 38,151명(6.1%), 경제 32,701명(5.3%), 세계사 29,683명(4.8%), 경제지리 20,498명(3.3%)이다.

위에서 보듯이 사회문화, 한국지리의 선택율은 높았으나, 세계사의 선택율은 낮았다. 문제는 11과목의 ‘인기 순위’가 최근 10여 년 동안 반복되고 있고, 그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선택과목의 선호도가 교육적인 중요성이 아니라 시험 준비와 고득점에 유리한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세계화 시대의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사회과 교육의 취지가 무색하게 세계사나 세계지리와 같은 과목은 학습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기피과목이 되었다. 특히 세계사는 작년 수능에서 마지막으로 치러진 경제지리를 제외하면 줄곧 최하위(4.8%)를 벗어나지 못하며 사실상 ‘고사’ 직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1996년 제6차 교육과정에서 필수과목, 선택과목제도가 도입되고, 1999학년도 수능 개편에서 탐구영역 선택과목제가 채택되면서 예견된 것이었다. 문제는 입시와 관련이 적은 과목들은 아예 개설되지 않거나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험생들의 사회과 ‘편식’ 현상과 세계사 기피 현상은 2013학년도 서울대 합격생들의 수능 선택율을 보면 더욱 심각한 상태이다. 서울대 문과 합격생 1,377명 중에서 37명(1.1%)만이 수능에서 세계사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금년 수능에서는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으로 선택과목 수가 2과목으로 줄어들고, 문과 지원자의 경우 우리 대학은 한국사가 필수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1과목만 선택하면 된다. 따라서 이러한 ‘편식’ 현상과 세계사 기피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등교육은 창의성을 갖춘 세계화된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는 원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차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가와 관련 연구자 및 교사가 공동의 연구와 협의를 통해 결정할 일이지, 학생들의 선택에만 맡길 사안이 아니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육부가 하루 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일인 것이다. 결국은 지금 너무나 세분화된 선택과목들을 통폐합해서 필요한 학습내용을 필수로 가르치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단기간에 실현 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대학에서 나름대로 일종의 ‘보수(補修)’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우리 대학도 이미 수학·영어의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기초교육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사는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 자연과학, 더 나아가 예체능 분야에 이르기까지 가장 기초적인 과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세계사를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입학전 프로그램에 인터넷을 통한 세계사 강좌를 개설해 줄 것을 제안한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사에 대한 교육도 받지 않은 우리 학생들에게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김덕수 교수
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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