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이고 선동적으로 갈등만 양산하는 프레임 전쟁 잘못된 프레임의 인식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

▲ 권민 편집장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을 때,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특정 의제를 인지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일정한 틀을 형성한다. 그 틀 바깥에서 사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를 이용해 틀을 먼저 선점한 쪽이 정치적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제창한 이 유명한 프레임 이론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공화당이 이러한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이용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이론은 2013년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관철되고 있는 듯하다. ‘포퓰리즘’ 등의 정치적 개념에서부터 ‘김여사’, ‘전라디언’ 등 남녀‧지역을 불문하고, 주위엔 특정 프레임의 구도에서 짜인 담론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좋은-주로 자극적이고 감성적인-프레임을 선점하고 이를 토대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상대방을 이기고자 할 때 사용하기 좋은 도구다. 그래서 주로 이미지 대결이 치열한 정치권의 세력 다툼에서 빈번하게 드러나곤 한다. 예를 들면, 성장 대 분배의 대립이 격했을 시기에는 성장과 분배의 적절한 조합을 통한 해결이란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선별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 논쟁이 등장했다. 보편적 복지를 외치면 ‘종북 좌파’로까지 몰아가는 특정 세력, 선별적 복지 하자 하면 ‘수구꼴통’이라 비판하는 세력 사이에 어떤 조화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최근에 불거진 국정원 사태 역시 마찬가지 상황으로 변질돼 버린 듯하다. 국정원이 댓글작업 등을 통해 대선에 개입하고 경찰 조사는 이를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 지난 6월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검찰, 경찰, 국정원, 여당의 야합이 아니냐는 의혹, 그리고 대선 개입에 대한 정황증거를 보면서 이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어찌보면 정당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될 법도 하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정치세력의 프레임으로 읽히는 순간 합리적 의심조차 특정진영의 논리가 돼버렸다. 이 정쟁의 틈에서 보면 국정원 사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특정 정치세력의 편들기를 자처하고 나서는 것으로 읽힐 뿐, 이 프레임 전쟁에서 논란의 해명과 사건의 실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정쟁이 생산적인 담론을 형성하지 못한 채 끊임없는 갈등을 양산해내는 데 있다. 갈등과 분열의 생산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문제의 해결보다는 사태를 극단적으로 몰고가는 데 집중하게 됐다. 국정원 사태뿐만 아니다. 통진당 사태, 경제적으로는 상법개정안·세제개편안까지,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프레임에 맞춰 사안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상대 진영의 허점을 찾느라 바쁜 모습들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여러 대립적 의견 속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사회와 국가의 운영에 있어 필수적이라 한다면 우리 사회의 프레임 갈등은 이런 전체적 방향성을 도외시한 채 그때그때의 일부 세력의 승리만을 위해 배타적이고 누군가를 도태시키는 양상으로 흘러왔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프레임 전쟁의 결과는 OECD국가 중 사회 갈등이 심각한 국가 2위라는 꼬리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년에 최대 246조원 손실이라 한다. 4위였던 지난 2009년 당시보다 더 나빠졌다. 우리 사회가 이 프레임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게 분명하다.

레이코프 교수는 프레임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부터가 새로운 틀을 통해 사회를 재구성하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일정한 틀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인지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교묘하게 짜인 프레임에서 한발짝 물러나보는 것은 어떨까. 갈등의 골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면 분명 우리 사회가 견지하고 있는 이 틀 자체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잘못된 프레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담론인지 객관화시켜보자. 우리가 잘못된 특정 프레임에 갇혀 사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해결’의 물꼬가 터질 수도 있다. 또다른 길고 지루한 정쟁을 계속하기엔 우리사회는 풀어야 할 문제들이 이미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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