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국가정보원(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분노한 시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시국회의를 결성해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국정조사는 여야의 정쟁에 매몰돼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되고 주요 언론은 사건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실체적 진실이 흐려지고 있는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정리하고 해당 사건과 관련한 논란을 되짚는다.

◇18대 대선, 긴박했던 9일=제18대 대선을 8일 앞둔 지난해 12월 11일 민주통합당(민주당)은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을 통해 불법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 선관위, 기자들과 함께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오피스텔에 있던 김씨는 국정원 직원임을 부인했고 경찰은 방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해 방을 나왔다.

민주당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증거로 확보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지만 김 씨는 2박 3일 동안 문을 걸어 잠근 채 민주당원들과 대치했다. 결국 국정원은 김씨가 국정원 직원임을 인정했지만 선거 개입 활동은 부인했다.

13일 김씨는 자신의 문을 열고 자신의 데스크톱 본체와 노트북을 제출하며 자신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으며 이번 일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두고 여야의 공방이 거세졌다.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대선 3차 TV토론에서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박 후보)은 인권침해라며 민주당을 비판했고 당시 후보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문 후보)은 박 후보가 피의자를 두둔한다고 지적했다.

3차 TV토론이 끝난 직후인 16일 오후 11시, 국정원 여직원을 수사 중이던 수서경찰서가 “국정원 여직원으로부터 증거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양 당 후보를 지지, 비방하는 게시글이나 댓글을 다는 등의 정치공작에 가담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중간수사 결과를 밝히자 SNS와 일부 보수 언론 등에서 문 후보를 거세게 비판했다. 새누리당 역시 민주당과 문 후보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했다.

반면 당시 문재인 측 공보단장이었던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경찰은 삭제 파일을 복원하는 데 최소한 일주일이 걸린다더니 2, 3일 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며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우 의원은 이어 “철저한 수사를 하기 위해선 하드디스크뿐만 아니라 IP 주소를 확보하고 인터넷 서버 등도 함께 수사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경찰의 갑작스런 중간발표 시점과 정황을 볼 때 외압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한 토론회에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경찰이 밤 11시에 갑작스럽게 수사발표를 한 경우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TV토론에서 문 후보에게 판국이 기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경찰이 로그인 기록도 조사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표한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새누리당이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이전에 결과를 알고 있었단 사실도 외압 의혹을 뒷받침했다. 박 후보 캠프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16일 낮에 “국정원 여직원 수사 결과 아무런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발언을 했으며 당시 새누리당 대변인이었던 박선규 의원도 “조사결과가 오늘 나올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결과를 신속히 알리려 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선거개입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12월 19일 결국 108만 표 차이로 박근혜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나둘씩 밝혀지는 진실들=이듬해 1월 3일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이 지난해 8월 2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오늘의 유머(오유)’ 사이트에서 16개의 아이디를 만들고 269개의 게시글에 288차례에 걸쳐 추천, 반대를 표시했다”고 밝히며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뒤집었다. 오유 사이트는 추천을 받은 횟수가 많으면 초기 화면 상단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 ‘베스트 게시물’로 등록되지만 아무리 추천이 많아도 반대가 3표 이상이면 등록되지 않아 여직원의 288번의 의견표시는 충분히 베스트 게시물 선정 혹은 선정 방해를 했을 수 있는 행위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브리핑에서 진상파악과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 후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은 하루 평균 인터넷 4천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등 수상한 인터넷 행적을 보였고 찬반 표시뿐만 아니라 120개의 게시물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며 “추가로 국정원 이 씨 등 3명이 김씨와 함께 오유는 물론 다른 사이트에서도 아이디를 공유하며 비슷한 인터넷 활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이들 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경찰은 국정원 조직차원의 정치개입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고 국정원은 이를 두고 단순한 대북심리전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국정원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 등을 진행해 6월 11일 원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김 전 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및 경찰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원 전 원장 외에 댓글 작업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은 모두 기소유예 됐다.

발표된 수사내용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 수십 곳에 수백 개의 아이디를 동원해 정치, 대선 관여 게시글을 올리고 1760여 차례 댓글에 대한 찬반 표시를 올리도록 지시한 뒤 사후 보고를 받은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중 검찰이 선거 개입이라고 적용한 것은 전체 1760여 개의 댓글 중 60여 개에 불과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 비판 댓글은 3건 뿐”이라며 “그간 민주당이 해온 주장은 ‘태산명동서일필(떠나갈 듯 소란을 떨었지만 결국 쥐 한마리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은 브리핑에서 검찰의 솜방망이식 처벌을 지적하며 이를 두고 “용두사미식 면죄부 수사”라고 비판했다.

또 이 날 검찰은 작년 12월 16일 저녁에 급작스럽게 발표된 중간 수사결과가 김 전 청장의 압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증거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양당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은 없었다’는 취지의 수사결과 발표를 지시했고 마지막 대선 TV토론 직후 이러한 내용의 자료가 배포된 것도 김 전 청장 지시에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원 전 국정원장의 단독범행인지, 김 전 청장의 은폐, 축소 지시 과정에 새누리당 측과의 접촉이 있었는지 등은 규명하지 못했다.

◇국정조사, 본질은 어디로?=여야는 대선이 끝난 후 국정원 정치개입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 여부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펼친 끝에 합의를 했다. 그러나 합의 후에도 증인채택 문제, 국정원 기관보고 공개 여부 등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했다.

지난 7월 마침내 시작된 국정조사는 연이은 진통과 파행을 거듭하다 세 차례의 기관보고와 29명의 증인에 대한 두 차례의 청문회를 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국정조사에서는 김 전 청장의 수사 은폐, 축소 지시가 다시 확인됐고 권영세 전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장,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김용판 전 청장 간 3각 커넥션이 드러났다.

하지만 국정조사가 국민들이 기대한 만큼의 진실규명을 이루지 못하자 ‘국조 무용론’이 제기됐다. 8월 16일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두한 원 전 국정원장과 김 전 청장은 모두 청문회 사상 이례적으로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국민들이 바라던 진실규명이 사실상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두 사람의 증인선서 거부를 증인의 기본적 권리라며 옹호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참여연대 장동엽 선임간사는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대한 진상규명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이를 방해했다”며 “국회의 권위를 새누리당 스스로가 무너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조사가 진실규명에 집중하지 못한 채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증인으로 나온 권은희 전 수사과장에게 “대한민국의 경찰이냐, 광주 경찰이냐”며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질문을 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장 선임간사는 “국조특위 위원이라면 권 전 과장이 수사 과정에서 어떤 방해를 받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물어봤어야 할 것”이라며 “조 의원의 발언은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김 전 청장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실력, 준비 부족으로 진실규명에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민교협 상임의장 백도명 교수(환경보건학과)는 “민주당은 경찰이 확보한 자료 이외에 아무런 자료도 확보하지 못했다”며 “이들에게 국정원, 경찰, 새누리당의 논리를 깨는 것은 역부족인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여야는 결국 지난 8월 23일 국정조사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결과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채 국정조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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