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관객 수 900만 명을 돌파한 「설국열차」에서 주인공인 커티스는 기차의 ‘엔진’과 ‘꼬리칸’으로 대표되는 빈부격차를 타파하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현실의 꼬리칸’에서도 「설국열차」에서와 같이 현실 속의 불합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저항이 당연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을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실제 현실 속에서는 “많은 이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순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로 국내에서는 그의 책이 올해에만 『유행의 시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등 5권이나 번역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가 생각할 때 사람들이 불평등을 참아내는 원인은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과 저항하는 데 필요한 큰 비용 등이다. 부자들은 그들이 부유해짐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나고 결국 사회 전체가 부유해진다는 ‘낙수효과’를 주장한다. 이에 대한 믿음은 대기업 감세와 탈규제화로 이어졌고 불평등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저자는 “전세계 인구 중 상위 20퍼센트가 생산된 재화의 90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는 반면 가장 가난한 20퍼센트는 불과 1퍼센트만을 소비하고 있다”며 ‘낙수효과’를 부자들의 부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라 평한다. 부자들의 논리대로라면 파이가 커진 만큼 각자에게 돌아가는 파이의 양이 함께 커져야 하지만 정작 나머지 사람들의 파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불평등에 순응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바우만은 “불평등에 저항할 경우 개인이 잃게 되는 ‘지위’, ‘위신’의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저항하기보다는 체념하고 얌전히 굴복하거나 아니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길을 추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조정된다”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비를 통해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나 사회 속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생각 등이 대중의 인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어 기존의 질서에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꼬리칸’ 사람들은 이 불평등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지그문트 바우만은 “세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비합리적”이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감수하면서까지 세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세계를 구원할 마지막 기회”라고 역설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책의 마지막에 밝혔듯이 지금의 상황이 음울하고 참혹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불평등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깨는 것으로부터 첫걸음을 떼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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