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편집권 독립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일보」에선 발행인의 배임·횡령혐의에 항의한 기자들이 무더기로 편집국에서 쫓겨나 파행적인 신문 발행이 계속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국민과 정부는 언론을 통해 소통한다는 말도 있듯 언론이 소통 창구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외압에 맞서 편집권을 지켜내는 것은 중요하다. 이에 『대학신문』은 언론사의 편집권 논란에 대한 자취를 살펴보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과 그 대안을 짚어본다.

▲ 그래픽: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해=편집권은 정치·경제 등 여러 외부적 힘에 대한 언론조직의 자율성과, 언론조직 내부에서 경영자들의 부당한 간섭에 대한 편집 종사자들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유독 한국에서 편집권 논란이 거센 이유는 정부 주도의 정국 운영과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개입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편집권에 대한 논란이 전개된 때는 19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이 여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통과됐을 당시였다. 언론 스스로 해결해야 할 언론 윤리 문제에 정부가 개입한 것은 편집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의견이 제기되는 등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1966년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은 거대 자본에 의해 편집권이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밀수 사건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의 언론은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했지만 삼성그룹이 운영하던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는 오히려 노골적으로 삼성을 옹호했다. 이 같은 사태로 언론의 공적 책임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며 언론이 재벌의 이익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80년대 이후 정치권력과 자본에 대해 편집권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제도가 논의되자 학계와 언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편집·보도국장의 선출에 기자들이 참여하는 방안이 이상적이라는 의견이 등장했다. 이후 사회적 민주화 물결에 힘입어 일선 기자들도 편집‧보도국장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언론은 정치권력‧자본에 대해 외적 언론 자유를 확보하는 듯 보였다.

◇다시 시작된 편집권 논란=그러나 20년이 넘은 지금도 편집권 독립과 관련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가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특히 편집‧보도국장과 일선 기자들의 갈등 사례가 많아지면서 편집·보도국장의 선출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상현 교수(연세대 미디어학부)는 “편집‧보도국장 선출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어떤 것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결정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며 “선출방식에 따라 편집국장이 달라지고 언론사가 달라지는 만큼 반드시 편집국장 직선제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기사를 쓰는 실무진(기자)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선출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신문」 사측과 노조가 지난 6월부터 진행 중인 단체협상의 최대 쟁점은 ‘편집국장 직선제’다. 「서울신문」은 지난 2000년 ‘제한적 직선제’를 도입한 이후 2006년 ‘결선투표제’로 정비해 완전 직선제를 운영했다. 하지만 2009년, 경영상의 이유를 들며 임명동의제가 필요하다는 사측과 편집권 독립에 악영향을 준다며 반대한 노조 측이 대립하며 논란이 벌어졌다. 결국 당시 종합일간지 중 유일하게 편집국장 직선제를 고수하던 「서울신문」이 편집국장 선출방식을 임명동의제로 전환했다. 4년이 흐른 지금, 「서울신문」 노조는 기자들의 편집권이 계속해서 위축되고 있다는 이유로 편집국장 직선제의 부활을 다시금 추진하고 있다. 「서울신문」 노조 이창구 노조위원장은 “헌법에서 보장된 언론의 자유는 사주나 대기업 자본가가 아니라 독자인 국민들이 누려야 하는 특권”이라며 “독자와 접하는 사람은 기자인 만큼 기자들의 총의가 모아진 사람이 편집국장으로서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부산일보」는 8월부터 시작된 단체협상에서 사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편집국장 3인 추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노조는 3인 추천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편집국장 3인 추천제란 사측이 편집국 노조원의 추천을 받은 3명의 후보 중 편집국장을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려는 제도이다. 이는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8년 「부산일보」 노조의 파업끝에 얻은 결과였다. 「부산일보」 노조 이승욱 상임부지부장은 “사장이 선임하는 편집국장은 사장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기 때문에 사장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3인 추천제를 통해 편집국의 수장을 선출하는 데 구성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고 이는 크게 보면 편집에 대한 독립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3인 추천제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지난 6월 법원이 사측의 입장에 반하는 보도를 냈던 이정호 전 「부산일보」 편집국장의 해임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만큼 편집권을 둘러싼 사측과 노조 간에 치열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권에 대한 논란은 방송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KBS에서는 야당 측 이사들이 수신료 인상의 조건으로 ‘국장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결국 부결됐다. ‘국장 직선제’는 보도 및 여론과 관련된 국장에 대해 기자와 PD가 직접 선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신문사의 ‘편집국장 직선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이사는 “KBS에 마련되어 있는 공정방송을 위한 모든 제도가 가동되고 있지만 여전히 편집권 독립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이 같은 논란은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사장이 일방적으로 선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편집권을 찾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편집권에 대한 보장이 비교적 잘 돼 있다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의 언론들 역시 편집권 독립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며 그 결과 비영리재단 운영, 사원지주제 등의 여러 제도가 등장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가디언」의 경우 편집국장 2인 추천제를 운영하고 있고 소유·경영의 경우 비영리재단이 관리한다. 독일 신문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역시 대주주들이 비영리재단에 보유주식을 출연해 경영자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확보했다. 프랑스 「르몽드」 지의 경우 사원지주제를 운영하며 경영진이 편집권을 간섭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언론사 역시 편집권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임명동의제’, ‘중간평가제’ 등 여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편집권 독립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하게 기존 언론의 소유구조를 탈피하고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 등장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은 경영난 해소 및 편집권 독립을 위해 지난 7월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언론 구조를 보여줬다. 기존의 주식회사 형태로는 자본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3만원의 출자금이면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매달 1만원씩 출자하는 조합원이면 편집위원회에 참석해 1인 1표의 의결권을 동등하게 갖는다. 또 광고주의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서 광고를 게재하지 않을 방침이다. 조합원 1인이 전체 출자금의 3분의 1 이상을 낼 수 없게 돼있기 때문에 소수의 편집권 지배 가능성을 배제한 것도 특징이다.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도 기존 언론의 구조와 다른 새로운 모형이다. 1만원 이상 후원금을 납부하는 3만여 명의 후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됨으로써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시사저널」의 ‘삼성 기사 삭제 파문’으로 편집권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극에 치달아 시사저널 기자들이 새롭게 만든 주간지 「시사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사인」은 소액주주들과 우리사주조합, 일반 투자자가 3분할을 한 소유구조를 바탕으로 편집장 직선제 등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를 갖추는 데 힘썼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대안언론도 모든 편집권 논란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평가받는다. 대형 언론사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협동조합 등의 모델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시험 단계라 지금은 지켜보는 단계”라며 “협동조합형이나 회원제 언론은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대형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