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비영리 알콜중독 치료 전문병원인 카프병원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 한국주류협회(주류협회)가 카프병원에 대한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해 카프병원이 지속적인 경영난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알콜중독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카프재단) 산하의 카프병원은 2004년에 개원해서 알콜중독 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물치료와 격리에 의존하는 민간병원과 달리 카프병원은 가족공동체 회복과 직업재활로 특화돼있었다. 비영리 원칙에 따라 환자들은 민간병원보다 비급여진료의 경우 반도 안 되는 낮은 진료비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공공성을 추구하는 병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주도 알콜정책이 부재한 상태에서 카프병원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통합적인 사회복지 모델을 구현했다. 이처럼 카프병원은 공공병원에 준하는 공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카프병원의 유래는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콜중독이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정부는 주류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롯데칠성 등 대형 주류사들이 속한 주류협회는 주류 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 감소를 우려해 지난 2000년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2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카프재단을 설립했다. 국민에게 술을 판매해 발생한 ‘음주 피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주류협회 회원사들은 매년 50억원을 모아 카프재단에 주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주류협회는 매년 지급하던 50억원의 출연금을 일방적으로 중단했고 9월 현재 170억 원 정도가 미납된 상태다. 직원들은 반년 가까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병원은 단전, 단수의 위기에 처하는 등 병원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여성병동이, 5월엔 남성병동이 폐쇄됐다. 지난 6월엔 마지막 남은 환자 10명을 퇴원 조치한 후 휴업에 돌입해 지금까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100여 명에 달하는 입원환자들은 제각기 흩어져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주류협회는 매년 8억원의 적자가 카프병원에서 발생해 재단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며 출연금 중단의 이유를 밝혔다. 또 주류협회는 기존에 납부하던 50억원을 치료보다는 예방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카프노조와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 시민공동대책위원회(공동위)는 주류협회 입장이 터무니없다며 반박했다. 정철 카프노조위원장은 “매년 8억원의 적자는 주류협회가 하는 거짓말이자 왜곡”이라며 “카프병원은 주류협회서 받은 50억원을 다 쓴 적도 없는데 적자라고 주장하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또 건강세상네트워크 박용덕 상임정책위원장은 “주류협회가 예방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예방사업으로 실행 가능한 것은 주류 취급 및 판매를 제약하거나 공익광고를 하는 것”이라며 “판매·취급 제약은 술을 판매하는 주류협회의 성격상 불가능하므로 사실상 주류협회는 돈이 많이 드는 치료·재활 사업 대신에 비교적 저렴한 공익광고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주류협회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해 환자들의 인권이 위협받자 카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금처럼 카프재단 재원을 사기업의 출연금에 의존하면 사기업의 이해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알코올 정책의 공공성 강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알콜중독 해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정부가 카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정 위원장은 “정부의 알콜 문제를 위한 예산은 매년 49억 원에 불과한데, 카프의 1년 사업규모는 80억 원에 달하는 만큼 우리는 정부정책을 대신한 기관”이라며, “복지부는 카프를 공공기관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부는 카프병원이 공공병원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공병원 전환에 난색을 표했다.

공동위는 주류협회 앞에서 1인 시위 및 천막농성을 벌이고,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하는 등 현 사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동위는 주류협회에 △재단 출연금 지급 △재단운영 개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공동위는 관련 주류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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