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대학로의 한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배우들의 눈빛에선 열정과 동시에 차분함이 느껴졌다. 마치 한 단어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표정의 이들은 서울대연극동문회(회장 이순재) 부설 극단인 ‘관악극회’의 회원들이다.
 
대부분 아마추어로 이루어진 단원들은 10학번 재학생부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주부, 회사원, 교사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다. 관악극회는 2012년 창단 공연 「하얀 중립국」에 이어 올해는 정기공연으로 아서 밀러의 「시련」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17세기 말 엄격한 청교도주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을 소재로 해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인 매카시즘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작년 「하얀중립국」에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던 이순재 씨(철학과·58년 졸업)는 25년 만에 연출을 맡았다.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을 이끌어나가는 그의 대본에는 배우들의 동선과 각종 메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대학신문』에선 관악극회의 두 번째 정기공연 「시련」의 연출자 이순재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관악극회는 우수한 고전연극을 무대 위에 올려 고전 연극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관객들도 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자 설립됐다고 알고 있다. ‘고전연극’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연극사에서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고전연극’이다. 대표적으로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체홉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명작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작가의 철학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일반 극장에선 수익성을 이유로 고전을 잘 공연하지 않는다. 관악극회는 이런 고전을 깊이 공부하고 그 고유한 작품성과 문학성을 관객들에게 전해주고자 한다.
 
△원작과 비교하여 다르게 연출한 부분은 무엇인가=공연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분량을 조금 줄인 것 외엔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동숭로의 공연들을 보면 고전을 재해석한다는 명목으로 연출가가 작품을 임의적으로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재해석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원작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작품 고유의 향기를 전해주기 위해 연출가의 임의적인 해석은 배제했다.
 
△⃟작품의 내용이 심오한 편인데 배우들은 대부분 아마추어이다. 연기 지도를 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나=배우들이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는 깊은 편이나 전문배우에 비해 겉으로 표출하는 것이 서툴다. 연극이란 일상의 재현인데 ‘연기’를 한다는 생각에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여기서 돌아봐라”, “이 쪽으로 걸어가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한다.
 
5일 저녁 찾은 공연장은 관객들로 만석을 이룬 모습이었다. 중간 휴식 없이 2시간 30분간 진행된 공연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극은 긴장감 넘치게 전개됐다. 원작을 고스란히 살린 연극은 아서 밀러의 극본이라는 뼈대에 숨결을 불어넣은 듯했다. 관객 김형석 씨(31)는 “누가 전문배우이고 아마추어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탄탄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총연극회에서 활동하다가 막내 배우로 참여한 재학생 당가민 씨(언론정보학과·10)는 “연극배우의 꿈이 있어 시작하게 됐는데 작은 배역이지만 선배님들께서 연기를 많이 도와주셨다”며 “이순재 선생님께선 작은 동작 하나하나도 시범을 보여주시는 등 자상하게 연출하시는 스타일”이라 전했다. 관악극회의 「시련」은 이번 달 5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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