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준 교수(물리천문학부)

언제부터인가 서울대생들도 ‘스펙’ 쌓기에 열중이다. 서울대 졸업장 프리미엄 덕에 타대생들에 비해 대학 시절 학점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었던 선배들은 학점 세탁까지 하며 스펙을 올리려는 후배들의 모습이 낯설고 안쓰럽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한테는 학점, 토익, 인턴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최고로 만드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대학 졸업과 함께 남는 것은 자기를 대변해 주는 스펙뿐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졸업생의 거의 절반이 우등 학점으로 졸업을 한다. 물론 이것은 하버드대와 같은 유수의 외국 명문 대학에 비해서도 특이한 일은 아니다. 최고의 대학에서 다수의 학생이 우등생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수한 학생이 많아지고 훌륭한 스펙을 갖춘 학생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대학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 외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 학부생들을 인터뷰하며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한 학생이 그 분야에서는 나름 중요한 이슈가 될 만한 주제를 말했고 그것은 학생의 화려한 스펙에도 어울리는 듯 했다. 학생의 답에 한층 고무된 나는 왜 그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정답̓이 없는 이 질문에 학생은 당황한 듯 얼버무렸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을 만든 나도 머쓱해지고 말았다.

강의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요즘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너무 얌전하다. 몇 해 전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왜 강의 시간에 질문을 하지 않는지 물어 본 적이 있다. 학생들의 반응은 놀랍게도 아주 단순했다. 질문을 하면 수업 시간의 일부를 잡아먹어서 친구들이 강의 듣는 시간을 빼앗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실상인즉 학생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의 지식을 습득해 최고의 성적을 얻는 매우 ‘경제적인 학습’을 원했던 것이다. 질문을 통한 동기부여나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일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왜?”라는 질문을 하며 뜸을 들이게 되면 행여 치열한 경쟁 속에 몇 발짝 뒤쳐질까 걱정하는 요즘 우리 학생들. 최고의 내신, 최고의 수능 성적을 내기 위해서 새로 들어온 지식을 잠시 곱씹어 볼 여유도 없이 무조건 빨리 무조건 많이 흡입해야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몸에 배인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탈무드』에 자식에게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다. 현명한 서울대생은 물고기 자체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친절한 강의를 통해 어떤 물고기를 어떻게 잡아야 돈이 되고 세상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 자신의 스펙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기잡이 ‘스펙’을 쌓으면서도 왜 어떤 물고기는 잡으면 안 되는지 무슨 이유로 물고기를 잡는지 등의 질문을 하는 학생은 거의 전무하다.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스펙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신속 정확하게 정답을 찾는 훈련보다 그 문제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남이 시키는 것을 묵묵히 쫓아가기 보다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수학 문제 풀이하듯 정답 확인에만 매달리지 말고, 그 문제의 배경이 무엇인지 왜 그런 문제가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새로운 각도로 문제를 뒤집어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보인다. 그러면서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대학은 스펙을 쌓기 위한 ‘인력 양성소’가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의 틀을 짜고 미래를 준비하는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유재준 교수
물리천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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