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디어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학 도서관’들이 변하고 있다. 이들은 열람실 혹은 서고(書庫)로서의 도서관을 벗어나 그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며 문화공간으로의 도서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대도 관정도서관 신축공사에 들어가며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점을 맞이했다. 이에 『대학신문』은 학문의 보고(寶庫)이자 세계 3대 대학 도서관으로 꼽히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도서관을 직접 방문해 대학 도서관의 의미와 그 역할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 보들리언 도서관의 정문 모습
사진: 허서연 객원기자 mama0629@snu.kr

◇세계 최대 규모의 서고(書庫), ‘보들리언’=영국 옥스퍼드대학은 런던에서부터 2시간가량 떨어진 근교 옥스퍼드(Oxford)에 위치해 있다. 옥스퍼드에 가까워지자 중세시대 성(城)의 모습을 본 뜬 여러 대학들이 모여 있을 뿐아니라 대부분 주변 건물들이 중세시대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벽돌 하나하나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장소는 단연 세계 3대 대학 도서관으로 꼽히는 ‘보들리언 도서관(Bodleian Library, 보들리언)’이었다. 보들리언 도서관은 1602년 엘리자베스 1세의 외교관이었던 토머스 보들리 경이 설립한 도서관으로, 영국에서 ‘대영 도서관(British Library)’ 다음으로 큰 도서관이자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다. 일부 학자들은 단일 건물의 축조연도를 기준으로 최초의 설립년도를 대략 14세기로 보기도 하지만 보들리언 도서관의 공식적인 설립년도는 1602년이다. 17세기 초, 본래 하나의 건물이었던 보들리언 도서관은 현재 부속건물이 12개나 되는 대형 도서관으로 발전했으며 세계 최고(最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보들리언 투어 가이드인 클라크 브라운(Clark Brown) 씨는 “2000년 통계에 따르면 보유 서적의 수가 대략 700만 권에 달했고 매년 서가의 길이로 약 4km씩(권수로 대략 13만 권) 늘어나고 있다”며 “때문에 보들리언 도서관은 400여 년 동안 영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서적을 모두 소장하다보니 공간이 부족해 지하 공간까지도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도서관의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책이 많기 때문에 잘못 꽂은 책을 찾는 직원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보들리언 도서관에 매년 8만여 권의 서적이 들어오고 있으며 현재 서가의 길이로 약 120마일(약 193km)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체계적인 대학 도서관 개방시스템=보들리언 도서관은 현지 가이드 및 관광 예약 없이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는 까다로운 건물이다. 철저히 옥스퍼드대 재학생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동문들에게만 개방된 곳이기 때문에 외부인은 도서관 투어 가이드를 대동해야 내부 입장이 가능하다. 또한 모든 촬영이 금지되기 때문에 가이드를 만나 올라갈 때는 모든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고 올라간다.

도서관의 개방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4시 30분,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지만 이 시간은 도서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구성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관광객과 외부인에게 도서관 내부를 입장할 수 있는 개방 시간은 따로 정해져있는데 평일에는 오후 3시 그리고 토요일에는 오후 12시가 바로 그 시간이다. 가이드 투어 역시 이처럼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며 투어 가이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을 할 수 있다.

현재 그 비밀에 쌓여있던 내부는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장소로 공개되면서 ‘보들리언’ 도서관보다는 ‘호그와트’ 도서관으로 더 유명하다. 처음 보들리언 도서관 가이드를 만났던 로비 0층도 촬영 장소 중 하나인 ‘호그와트의 양호실’이었다. 관광객들의 질문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리포터」 질문에 가이드는 “영화 「해리포터」의 흥행 덕분에 관광객들이 더 몰리게 됐다”며 “관광객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관광 시스템(Tour system) 및 여러 전시활동도 더 체계적이고 활발해졌다”고 밝혔다.

▲ 로비 0층이자 「해리포터」의 양호실, 투어 가이드를 만나는 장소로 가이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보들리언 도서관

◇국왕도 지켜야 하는 엄격한 대출 ‘원칙’=또 그는 “흥미롭게도 이 도서관이 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면서도 문제없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것은 예전부터 고수한 하나의 ‘원칙’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책의 분실 위험 때문에 그 자리에서 열람만이 가능하며 책은 대출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설립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국왕 찰스 1세도 대출을 거부당했으며 올리버 크롬웰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크롬웰이 대출을 부탁했을 때 이곳의 사서는 요구한 책 대신에 “누구를 막론하고 책의 대출을 금지한다”는 보들리언의 규정을 한 부 필사해 보내줬다고 한다.

대출이 불가한 원칙 때문인지 열람실(Reading room)에서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주로 자격증, 국가고시 공부 혹은 시험공부로 열람실을 쓰는 한국 대학의 열람실과는 달리 이곳의 열람실은 자유로운 북카페 느낌을 자아냈다. 보들리언을 방문한 7월은 방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생들과 교직원의 아이들로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열람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학생도 있었지만 창틀에 걸터앉아 자유롭게 햇볕을 맞으며 책 읽는 학생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책장 부근에 놓여있는 큰 원목 책상과 아담한 스탠드, 그리고 베이지 톤 벽지의 보들리언 열람실은 치열한 경쟁의 공간이 아닌 편안한 독서의 공간이었다.

◇교양을 넓히는 무료 문화행사들=외부인에게, 그리고 구성원에게 다소 제한적이며 폐쇄적인 운영시스템을 보이지만 이 덕분에 안정적인 운영을 이어가는 보들리언에서는 서고로서의 도서관에 그치지 않고 지역문화의 구심점 역할이 되기 위한 문화행사을 주관하고 있다. 보들리언에서는 정규적으로 외부공간인 광장과 실내 공간에서 무료로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특히 보들리언 건물 안에 위치한 광장은 문화행사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취재를 갔던 날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올리기 위한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는데 공연이 시작하기 한참 전이었음에도 주변에는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중 미국인 관광객 제임스 홀퀘스트(James Hallquist) 씨는 “투어 신청을 하지 못해 내부 구경은 하지 못했지만 광장에서 열리는 연극으로 가족들과 그 아쉬움을 달랜다”며 “이렇게 풍부한 문화공연을 손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부럽고 미국도 문화공연에 대해 더 발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 야외 무대를 설치 중인 보들리언 도서관의 광장
사진: 허서연 객원기자 mama0629@snu.kr

외부공간인 광장에서는 규모가 큰 공연 같은 특별 문화행사가 열린다면 보들리언 실내에서는 전시행사가 매년 빠지지 않고 진행된다. 이번 여름 전시회의 주제는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전시: 마법 책-중세시대부터 중간계까지 (Exhibition: Magical Books-From the Middle Ages to Middle-earth)’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5월 23일부터 10월 27일까지 진행되며 일명 ̒옥스퍼드̓로 알려진 이 대학 출신 작가들인 C.S. 루이스, J.R.R. 톨킨, 수잔 쿠퍼, 앨런 가너와 필립 풀먼 등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는 한 작가의 판타지 작품이 선정돼 이에 대한 그림 그리기, 스토리텔링, 상상해서 이야기 만들기 등의 창작 활동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등이 진행됐으며 홈페이지에 어떤 작가의 작품이 진행되는지 업데이트가 되기 때문에 원하는 작품의 전시를 골라 관광할 수도 있다. 물론 입장료는 무료이며 외부인에게도 개방되는 전시다. 또 전시에 등장하는 이 ‘옥스퍼드’ 저자들이 자유롭게 영감을 받은 신화, 전설 그리고 마법의 관행을 포함하는 책과 원고들도 함께 전시되며 이 역사적인 실제 자료는 보들리언에 보관된다.

이러한 정규행사 외에도 보들리언에서는 심포지엄 및 각 단대의 학술행사 등도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는 보들리언 측 관계자는 “현재 보들리언에서 열리는 행사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더 풍부하고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경험하게 하고 즐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오늘날 보들리언에서 주관하는 대부분의 문화행사는 옥스퍼드시와 영국 정부에서 활발하게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관계자는 “개방적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문화행사 덕분에 옥스퍼드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서 보들리언의 문화행사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참여도만큼 행복지수도 85%이상 높게 나왔다”며 문화행사가 지닌 긍정적인 영향도 설명했다.

앞으로 완공될 관정도서관도 보들리언 도서관처럼 다채로운 문화공간, 그리고 지식의 보고(寶庫)로서의 도서관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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