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윤희 부편집장

고딕양식이 가득한 프랑스 거리는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하다. 스위스의 절경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고취시킨다. 간간히 보이는 유럽인들의 여유는 보는 이들까지 여유롭게 만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행을 나선 ‘할배’들은 빵으로 차려진 유럽식 아침식사에 국물이 없다며 투덜대다 한 구석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 먹는다. 와인을 앞에 두고 ‘이슬’이 없다며 아쉬워하고 여행 경비가 부족해 고스톱으로 내기를 하기도 한다.

배낭여행을 컨셉으로 한 ‘꽃보다 할배’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금잔디를 지키는 꽃미남 4인방이 아닌 중년 노배우들이다. 요즘 대세인 자극적인 폭로와 독설도 없다. 스타 PD의 이름을 가린 셈 치더라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매 회 화제를 몰고 오는 ‘꽃보다 할배’는 간만에 나온 대박 예능 프로그램이다.

‘꽃보다 할배’가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지라는 볼거리와 할배들의 나이를 잊은 듯 하면서도 친숙한 행동도 그 이유지만 시청자들이 느끼는 대리만족을 빼놓을 순 없다. 중견 배우 4명의 배낭 여행기는 모두가 꿈꾸는 정년 이후의 삶과 닮아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뤄낸 후 동료와 함께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며 그간을 되돌아보는 시간. 정년 이후에 대한 불안감을 저마다 안고 있는 모두에게 ‘꽃보다 할배’는 장밋빛 제2의 인생의 발현이다.

그러나 전원을 끄면 TV 속 로망은 채찍질이 돼 돌아온다. 정년 이후 할배와 같은 찬란한 삶을 누리기 원한다면 그때부터 혹독한 현실은 인내해야만 하는 연단의 과정으로 전환된다. 20대는 꿈, 희망이라는 진부한 단어를 뒤로하고 정년 걱정 없는 ‘철밥통’ 직장을 찾아 헤매야 한다. 부모님 세대가 느끼는 부담은 더하다. 회사 안에서는 조기퇴직 권유가 부담스럽고 가정에서는 생활비, 자녀 학비, 부양비 삼중고가 어깨를 짓누른다. 없는 돈을 쪼개 정년을 대비해보지만 그 대비마저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다. 그렇게 젊은날을 열심히 일한 대가로 정년을 맞더라도 취미와 여행을 즐기는 여유있는 삶을 기대하긴 어렵다. 당장의 생계 유지를 위해 다시 사회로 뛰어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가혹한 시대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노인 일자리와 국민연금 등 숫자가 특히나 민감한 상황들에 국민들은 한껏 날을 세웠다. 현안을 인식한 정부는 지난 4월 정년 연장이라는 강수를 뒀다. 정년 60세를 법제화하고 2016년, 사업장에 따라서 2017년에 의무적으로 정년 제도를 도입하게 만든 것이 그 요지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비판에서부터 임금체제의 개편이 없는 연장은 반쪽짜리 해결책이라는 비판까지 분분한 논란을 일으켰다. 정년 연장은 출산율, 실업률, 청년일자리 문제, 국민연금 등 사회 여러 수치들과 마치 끈 하나로 이어진 듯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때문에 섣불리 한 쪽 끝을 늘린다면 여러 요소들이 덩달아 흔들리니 그 복잡한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름답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젊을 때 한껏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 할 것 같아”

‘꽃보다 할배’에서 ‘구야형’으로 불리는 연기자 신구는 파리 여행 도중 자신의 일생을 더듬으며 소회를 밝힌다. 이 명언이 역설적인 이유는 청춘 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정년의 안락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과 정년, 그 두 가지 토끼를 다 잡기란 쉽지 않은 사회에서 과연 한국은 정년이 웃을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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