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울대 이공계인, 그들을 주목하다 ②

▲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인간은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세포가 분열되면서 각각의 세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물질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다른 분화(성장)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똑같은 DNA를 가진 세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다양한 세포가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질문의 대답을 찾는 학문인 ‘후성유전학(epigenetics)’을 연구하는 윤홍덕 교수(의학과)를 만나봤다.

영양이 세포분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후성유전학은 DNA의 염기서열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후천적인 유전자 발현 조절을 연구하는 유전학의 하위 학문이다. 생물의 유전정보는 ‘염색질(chromatin)’에 담겨있고 그 염색질은 실과 같은 DNA와 DNA가 감기는 실패 역할을 하는 ‘히스톤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히스톤 단백질에는 다양한 물질이 결합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을 ‘수식화’라 한다. 수식화가 일어나면 염색질의 구조가 달라지고 이는 DNA의 발현에 변화를 일으킨다. 후성유전학은 히스톤 단백질에 일어나는 수식화의 패턴을 연구해 수식화와 단백질 발현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이다.

윤 교수는 줄기세포를 후성유전학적으로 연구해 줄기세포의 영양상태가 줄기세포의 분화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주목을 받았다. 줄기세포의 대사 과정은 일반적인 세포와 다르다. 일반적인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하나의 포도당 분자당 36개의 ATP를 얻는다. 하지만 줄기세포의 경우 미토콘드리아를 통하지 않고 ‘해당작용(glycolysis)’을 통해 하나의 포도당 분자당 2개의 ATP만을 얻는다. 즉 같은 양의 포도당을 소화시켰을 때 줄기세포는 일반 세포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의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에너지 시스템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포도당이 필요하다. 이처럼 줄기세포는 비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포도당(에너지원)의 부족을 막기 위해 포도당 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윤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영양상태와 줄기세포 분화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줄기세포의 경우 다양한 세포로 분화하기 때문에 영양상태가 분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원인을 연구하기에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영양상태와 줄기세포 분화 간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포도당의 농도에 따른 줄기세포의 분화를 관찰해야 한다. 관찰 결과 포도당의 농도가 높으면 줄기세포의 전분화능(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유지되지만 포도당의 농도가 낮으면 전분화능을 잃고 분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포도당의 농도 변화를 줄기세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포도당의 일부는 대사 과정에서 ‘오글루넥’이라는 물질로 바뀌는데 포도당의 농도가 높으면 오글루넥의 농도도 높다. 윤 교수는 포도당의 변형체인 오글루넥이 줄기세포의 특정 단백질에 가서 수식화하는 것을 관찰했다. 만약 그 단백질이 세포의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라면 오글루넥이 분화와 연관성을 갖는다는 가정이 가능해진다. 윤 교수는 특정 단백질에서 오글루넥이 결합하는 부위를 변형(mutation)시켜 오글루넥이 붙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포도당 농도가 높은 상황(오글루넥의 농도도 높다)에서도 줄기세포가 분화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정상 줄기세포에서는 포도당의 농도가 높으면 전분화능을 유지하지만 오글루넥이 붙지 못하는 줄기세포의 경우 포도당의 농도가 높아도 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윤 교수는 오글루넥이 줄기세포의 분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밝힌 공로로 올해 4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다.

▲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학계의 통념을 깬 ‘p53’ 작용 메커니즘

윤 교수는 암 억제 인자 연구를 통해 기존 학계에서 잘못 알려졌던 통념을 바로잡기도 했다. 암 억제 인자인 p53은 세포 주기에서 세포가 정상적인 분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가 손상을 입은 경우 p53은 세포 분열을 멈추고 수선하도록 지시하거나 손상이 큰 경우에는 세포의 자살을 유도한다. 기존에는 세포가 손상됐을 때 이를 세포가 인지한 후 p53을 만들고 만들어진 p53이 작용하여 세포 주기가 멈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윤 교수는 “p53의 입장에서 유전자의 특정한 서열을 찾아 작용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기존의 설명이 부적합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윤 교수는 p53이 세포 내에 소량 존재하고 유전자에 붙어 있는 상태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건강한 세포의 경우 ‘케빈 1’이라는 단백질이 p53의 작용을 막고 있기 때문에 세포 분열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만 세포가 손상을 입게 되면 케빈 1은 기능을 잃으며 떨어지고 p53은 즉각적으로 유전자에 작용하여 세포 주기를 멈출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윤 교수는 암 억제 인자인 p53의 정확한 작용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었다.

세포의 일대기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

현재 윤 교수는 줄기세포에서 노화세포까지 이어지는 세포분화 과정에서 세 단계(줄기세포, 성체세포, 노화세포)를 골라 각 단계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세포는 아직 분화하지 않은 줄기세포에서부터 노화세포까지 다양한 층위를 갖는다. 같은 개체의 세포이기 때문에 같은 DNA를 갖지만 분화의 정도에 따라 다른 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정보는 의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많은 학자들이 주목하는 문제다. 세포분화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그 사람이 어떤 학교를 다니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일을 경험하여 지금의 상태에 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2년 노벨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iPS세포’ 기술을 통해 분화된 세포를 역분화 시킬 수 있게 됐다.(『대학신문』 2013년 4월 15일 자) 하지만 iPS세포 기술은 줄기세포가 노화세포까지 분화되는 연속적인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역분화 기술은 노인을 아기 상태로 돌리는 기술이지만 그 사이에 어떤 과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연구진들이 그 중간의 과정을 연구하고 있고 윤 교수 역시 줄기세포, 성체세포, 노화세포라는 세 단계를 선택하여 연구하는 중이다.

세포의 일대기를 밝히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고 있는 윤 교수. 그에게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전분화능을 가진 줄기세포 연구나 암세포 연구에서 후성유전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꼭 밝히고 싶다”고 답했다. 그가 지금과 같은 열정적인 연구를 통해 후생유전학계의 ‘일대종사(一代宗師)’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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