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사진 1)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노어노문학과 배우들
사진 2) 독어독문학과 배우가 공연 전 분장을 하는 모습
사진 3) 공연 전 기계를 점검하는 영어영문학과의 음향 스텝들
사진 4) 공연을 일주일 앞둔 불어불문학과의 연습 장면
사진: 까나 기자 ganna@snu.kr, 전근우 기자 aspara@snu.kr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인문대의 대표 축제인 외국어연극제(외연제)가 벌써 17돌을 맞았다. 2주간 진행되는 외연제는 9월 2일(월) 영어영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의 공연으로 시작됐으며 17일 서어서문학과의 연극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9월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두 달간의 여정을 요모조모 짚어보자.
 
해마다 외연제의 중심을 이끌어 갈 연출단과 기획단이 꾸려지고 나면 배우 모집이 시작된다. 주로 배우는 인문대 각 과의 1학년이 맡게 된다. 이렇게 신입생 때 배우로 참여했던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가면 연출, 기획, 스텝 등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외연제가 인문대만의 축제는 아니다. 다른 단대에 속해 있지만 단지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하는 학생들도 매년 있다. 한편 외연제에선 유난히 남장을 한 여자 배우가 자주 눈에 띈다. 어문계열의 경우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 남자 배우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어독문학과는 올해 4명의 남자 역할 중 3명이 여학생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처음 연극에 도전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하기 전 일종의 ‘준비운동’을 하게 된다. 각 과에선 ‘모놀로그’라는 행사를 통해 간단한 독백 지문을 연습해서 공연한다. 이때 배우들은 기본적인 발성법과 감정선을 익히고 짧게나마 무대 위에 서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7월 첫 주에는 외연제의 밑바탕을 그릴 외연제 총기획단이 구성된다. 각 과의 기획이 모인 총기획단은 외연제에 배당된 예산을 관리하고 공연 장소와 공연 일정을 총괄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무대 합판, 배우들의 도시락, 공연 팜플렛 등은 공동 예산으로 구매한다. 9월엔 공연을 하고자 하는 동아리들이 몰리기 때문에 공연장 예약은 수강신청만큼이나 치열하다. 외연제 총기획 김태완 씨(독어독문학과·11)는 “2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했는데 올해는 다행히도 모든 과가 공연장을 배분받을 수 있었다”며 “이전엔 외부 공연장에 돈을 지불하고 공연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총기획단의 또 다른 중요 업무는 ‘어울마당’을 기획하는 것이다. 외연제는 인문대 전체의 행사임에도 정작 연습과 공연은 학과 내부에서만 이뤄진다. 그렇기에 다른 과의 배우들과 교류하고 서로가 공연할 작품을 소개받는 어울마당은 중요한 자리다. 사실 어울마당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자리’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올해는 배우들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려 시도한 점이 엿보였다. 김태완 씨는 “작년에 연기강사의 강의를 듣는 프로그램이 지루했다는 비판을 수용해 각 학과의 배우들을 섞어 팀을 만들고 즉흥 역할극을 공연해보도록 구성했다”고 전했다.
 
공연의 핵심을 이루는 작품은 어떻게 선정될까. 작품은 주로 연출이 지도교수나 대본 스텝과 상의하여 해당 언어권에서 문학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한다. 올해 영어영문학과에선 셰익스피어 등 고전을 공연해왔던 전통을 깨고 재미교포 작가인 ‘로이드 서’의 「아메리칸 환갑」이라는 현대 희곡을 선택했다. 연출 이기윤 씨(영어영문학과·12)는 “페미니즘 문학, 이주민 문학이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주류 문학이 아닌 작품을 다뤄보았다”고 말했다.
 
무대에 올릴 작품이 정해지면 원작을 각색하고 자막을 제작하는 과정에 돌입한다. 연출 조시연 씨(불어불문학과·12)는 “자막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17세기 프랑스 역사와 관련된 부분은 과감히 줄였다”고 말했다. 연출 안서영 씨(노어노문학과·11)는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나 극적 장치들을 배우들과 상의해서 삽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외국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도 수정이 가해진다. 연출 소중환 씨(서어서문학과·12)는 “‘스페인식 유머’는 대사만으론 관객들에게 충분한 웃음을 이끌어내기 어려워 슬랩스틱 코메디(몸개그)로 바꿔보았다”고 말했다. 독어독문학과는 아예 대본 각색팀이 따로 꾸려져 1학기 종강 직후부터 각색 작업을 했다. 기획 김태완 씨는 “독일 희곡 작품은 음울하고 심오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관객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각색에 공을 들이는 편”이라고 전했다. 원작 「물리학자들」이 핵 위기가 고조되던 1960년대가 배경인 것에 착안해 ‘후쿠시마의 방사능보다 지독하다’고 대사를 각색해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본이 완성되고 본격적으로 연습 기간에 들어간 배우들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작품을 꼼꼼히 분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본을 반복해서 읽으며 작품의 주제 의식, 시대적 상황, 인물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불어불문학과의 경우에는 교수님의 지도 아래 배우들이 프랑스어 원작을 강독하는 과정을 거쳤다. 앉아서 대본을 파고드는 과정을 넘기면 이젠 매일 이어지는 연습이 기다리고 있다. 배우 윤다슬 씨(불어불문학과·13)는 “공식적인 연습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지만 그 외에 8시까지 연습이 이어지기도 해서 학기 중보다 더 바빴다”고 말했다. 원어로 된 대본을 정복해야 하는 것도 큰 과제다. 신입생들의 외국어 실력은 거의 초급 수준이라 뜻도 모르는 대사들을 무작정 암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사를 암기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대사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어야 한다. 불어불문학과는 신입생 배우마다 프랑스어 실력이 탄탄한 고학번을 1대 1로 배정하여 발음 교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서어서문학과는 여름 방학에 개최한 스페인어캠프에서 외연제에 참가하는 학생들로만 구성된 반을 별도로 운영했다. 이 학생들은 원어민 교수들에게 발음과 억양을 집중적으로 지도받을 수 있었다.
 
공연 준비의 진정한 마무리는 보이지 않는 스텝들의 땀방울로 이루어진다. 소품, 의상, 분장, 조명, 무대 제작, 음향, 홍보물 제작까지 역할도 다양하다. 우선 원어로 공연되는 외연제의 특성상 번역된 자막을 프로젝터로 비추는 자막 스텝의 역할이 중요하다. 홍주희 씨(노어노문학과·12)는 “배우가 대사를 잊는 등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텝들도 한정된 예산에서 소품과 의상, 무대를 제작하려면 발로 뛰는 노력도 필수다. 불어불문학과 의상 담당 이윤선 씨(의류학과·13)는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을 떼어 직접 의상을 제작하고 구제상가를 돌아다니며 고전적 느낌을 주는 특이한 옷들을 구했다”고 전했다. 영어영문학과는 국립극장에서 제작가의 5% 정도의 금액으로 소품을 대여할 수 있었다. 또 소품은 최대한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많다. 김민수 씨(서어서문학과·12)는 “소품으로 필요한 침대를 지인의 기숙사 방에서 남학생들이 직접 옮겨올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몇 달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모여 탄생한 공연은 마지막으로 관객과의 만남만을 기다리고 있다.
 
배우들의 대사 한 마디, 작은 손동작 하나에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노부부가 껴안는 장면에선 장난스럽게 환성을 지르고, 반전이 드러나자 어두워지는 조명과 함께 관객도 숙연해진다. 공연이 끝나자 배우들이 하나 둘씩 음악에 맞춰 걸어 나온다. 모든 스텝과 배우가 손을 잡고 인사를 한다. 학과 친구들, 지인들, 부모님과 교수님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김지영 씨(영어영문학과·12)는 “방학을 바쳐 만든 연극을 보니 친구들이 고생했을 것이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며 “할아버지 역할을 맡은 후배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높임말을 쓸 뻔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외연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배우 김혜리 씨(영어영문학과·13)는 “같이 연극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생기고 교수님들께서도 밥을 사주시는 등 격려해주셔서 과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공연을 관람한 크리스티안 바이어 교수(독어독문학과)는 “희곡 작품을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올릴 정도로 소화해내는 과정은 문학을 음미하고 외국어 실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다섯 개 학과들이 빚어낸 공연들은 작품도 언어도 다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이 전해주는 감동만은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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