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월)부터 12일까지 고려대 총학생회는 고려대 내 대학평의원회(평의원회) 개설을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지난 6월에는 연세대‧고려대 등 평의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7개 사립대의 총학생회가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각 대학에 평의원회를 조속히 구성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자율성’의 그늘 하에 사립재단 이사들의 독단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자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교육환경을 만드려는 노력으로 7년 전 평의원회의 설립이 의무화됐지만 최근 이에 대한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평의원회를 둘러싼 논란의 배경을 살펴보고 주요 쟁점을 짚어봤다.

▲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평의원회 제도가 도입되다=평의원회는 학칙 재‧개정 혹은 등록금‧예산 등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대학의 여러 의사결정에 대해 의결‧심의‧자문하는 기구다. 의결 또는 심의기구인 국립대 평의원회와 달리 사립대학의 평의원회는 학내 최고 의결권을 가진 이사회 혹은 교무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을 심의‧자문하는 기구이다. 평의원회는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나, 교수들로 구성된 교무회의와 달리 교수뿐만 아니라 교직원, 학생, 동문 등이 참석한다는 점에서 참여의 폭이 넓다.

평의원회에 대한 논의는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시작됐다. 일부 사립대의 비리와 독단적 운영을 막고자 발의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사립대의 평의원회 구성을 의무화 했기 때문이다. 평의원회 의무화 조항에 대해 ‘대학 의사 결정의 민주화와 대학자치의 형평성’을 주장한 찬성 측과 ‘사학 자율권 침해와 의사결정의 효율성 저해’를 우려한 반대 측이 대립해 논란이 일었다. 결국 2006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시행령 제10조 6항)을 통해 교직원, 학생의 참여가 보장된 평의원회 설립을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평의원회 설립 의무화 됐지만=사립학교법이 개정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일부 사립대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 6월 평의원회 미설치 대학의 총학생회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각 대학의 평의원회를 조속히 구성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고은천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도 참여해 학교 정책에 정기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대학은 ‘사학의 자율성 침해’, ‘필요성의 저조’ 등을 이유로 평의원회를 아직까지 설립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속내는 사학법인과 학교가 자신들의 의지대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대학들이 평의원회 설치를 미루고 있는 것은 학내 의사결정에 대학구성원들의 참여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 크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7년간 이런 대학들에게 시정요구만 할 뿐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도 갈등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했다. 교육부의 미온적 태도에 비판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지난 7월에서야 해당 대학법인 이사회의 신규임원 취임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신인섭 과장은 “적게는 13차례부터 많게는 20차례까지 시정명령을 했지만 대학 측은 이를 듣지 않았다”며 “이번 제재방안으로 모든 대학에 평의원회가 설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9월 말 지금 평의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대학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4곳이다.

◇평의원회…설치만으로 OK?=평의원회가 설치된 학교에서는 그 역할과 지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6월 중앙대 이사회는 내년부터 비교민속학전공 등 4개 학과를 폐지하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승인했다. 중앙대 본부는 평의원회에 개정안의 심의를 요청했지만 평의원회는 “학과 폐지가 학내 구성원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결정됐다”며 심의를 거부했다. 이후 중앙대가 학칙 개정안 승인을 강행하자 학생들은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학칙개정은 무효”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평의원회는 의결기관이 아니라 심의기관이므로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개정안을 무효라고 할 수 없다"며 중앙대의 손을 들어줬다. 한남대에서도 철학과를 폐지하는 안건이 평의원회에서 부결됐지만 학교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 평의원회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학교 측과 학생들의 의견차가 드러났다.

평의원회가 심의기구 역할을 하는 경우 사실상 학교 측의 독주를 견제할 수 없으므로 평의원회를 의결기구화 하자는 방안이 제기된다. 심의기구인 평의원회는 대학을 기속(羈束)하는 법적 효력이 없으며 자문‧권고적 효력만 있지만 의결기구가 된 평의원회는 대학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의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학생들이 직접 대학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대학 내 의사결정의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임 연구원은 “대학 평의원회가 의결기구화 되지 않는 이상 중앙대‧한남대와 같은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과 조정 혹은 등록금‧예산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평의원회에도 의결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연세대의 평의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연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단순히 평의원회 설치 요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권한과 지위의 격상에 대해 주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립대학 측은 평의원회의 역할을 자문기구로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일부 대학은 평의원회 설치 의사조차 없어 평의원회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