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사회참여를 2015년까지 2배로 늘리기 위해 유엔이 수행할 수 있는 캠페인을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함께 제시하시오.”

논제가 제시되자 조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옷차림도, 피부색도 달랐지만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발표까지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레바논, 미국, 베네수엘라, 스위스, 시에라리온, 알제리, 그리고 한국 대표로 이뤄진 조원들은 “빌드-어-퓨쳐"라는 캠페인명을 바탕으로 차곡차곡 계획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발표와 박수로 끝나는 형식적 대회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 지원기구인 헐트상 대회의 프리야 설턴 지역본부장이 심사위원으로 나섰으며, 우수한 캠페인은 유엔 사무총장 청년특임대사 아흐메드 알린다위에게 개인적으로 전달돼 유엔 전반을 가로지르는 국제적 캠페인에 활용될 계획이었다. 세상을 바꿀 기회를 얻었다는 듯 참가자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유엔 국제기구인 유엔문명간연대(UNAOC, UN Alliance of Civilizations)와 글로벌 교육기업 EF가 지난달 24일부터 31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여름학교’의 한 장면이다. UNAOC는 점증하는 극단주의에 대항하고자 59차 유엔총회의 결의를 통해 2005년 설립되어 세계 여러 문명권 사이의 이해와 협력 증진을 목표로 시민사회를 지원해왔다. 이번에 개최된 여름학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35세 이하의 청년들에게 국제문제를 토론하고, 강연을 들으며 상호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해 세계 화합을 위한 청년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항공료를 포함한 참가비 전액은 주최 측이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모두 변화를 향한 열정으로 사회에 참여해 온 청년들로 대부분 인권단체 등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사회적 기업가 그리고 저널리스트로 이뤄져 있었고, 독립 블로거와 변호사, 심지어 호주 출신의 코미디언도 있었다. 국내 최초로 참가하게 된 필자도 대학언론 기자로 활동하고 학보사 네트워크인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를 이끌었던 점 등을 인정받아 한국 대표로 선발됐다. 교육봉사 NGO를 운영해 온 안율비 씨(고려대 행정학과·4)도 함께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14만 명, 한국에서는 2,700명이 지원했으며, 영문 에세이와 자기소개서, 소정의 어학시험을 기본으로 지역적 안배를 거쳐 92개국에서 100명이 최종 선발됐다.

▲ 사진: 이문원 객원기자 moonwon@snu.kr

92개국에서 모인 청년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작은 유엔 회의장을 연상케 했다. 북미와 유럽은 물론이고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중동의 분쟁지역, 미얀마, 케냐, 에콰도르 등 개발도상국, 그리고 가장 최근에 유엔에 가입한 신생국 남수단공화국의 대표도 참가했다. 이들을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리아 대표는 미국 출입국심사대에서 4시간 이상 조사를 받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3번 이상 비행기를 갈아타야 해 이틀이 넘는 여정 끝에 도착하기도 했다.

일주일간의 일정은 정체성(Identity), 활동(Outreach), 이해(Understanding), 전략(Strategy), 영향(Impact)의 다섯 가지 주제에 기반한 강연과 워크샵, 토론과 과제로 채워졌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세계 시민권, 소셜미디어 활용 전략, 평화를 위한 협상의 기술, 사회적 기업의 기초 등 사회변화를 위해 현장에서 뛰려는 청년들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내용들 위주였다. 연사로는 『소셜노믹스(Socialnomics)』로 유명한 에릭 퀄먼 교수, 협상전문가 조쉬 바이스 교수 등 십여 명의 권위자들이 초청됐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청년공약에 따라 새롭게 임명된 청년특임 알렌다위 대사의 특별강연도 있었는데, 청년참여 활성화를 위한 유엔청년봉사단(UNV Youth) 창설, 청년과의 소통을 위해 각 유엔 기구를 가로지르며 만들고 있는 청년 조직 등에 대한 설명 등이 큰 환호를 받기도 했다.

여름학교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28일 유엔본부에서 고위급 인사와 가진 간담회였다. 잔 엘리야슨 유엔 사무부총장과 나시르 압둘아지즈 알-나사르 전 유엔총회 의장을 비롯해 유엔개발계획(UNDP), 국제월드비전, UNAOC 등 개발 관련 국제기구의 대표자들은 청년대표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자 신중히 대답하면서도, 그 열정에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역 재건을 위한 청년운동을 이끌어 온 르완다 청년대표 장 드 두 가테트가 1994년 르완다 인종청소 문제 개입에 실패했던 것을 지적하자 엘리야슨 사무부총장이 뼈아픈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다. 특히 엘리야슨 사무부총장은 간담회 직후 시리아 내전과 관련한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조국의 문제에 신중히 개입해줄 것을 당부하는 시리아 청년대표 마문 마헤이니의 발언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청년들에게 유엔은 뉴스에서나 접하는 먼 세상의 일일지 모른다. 뉴욕의 화려한 외교무대는 실업, 빈곤, 차별 등 우리가 겪는 구체적인 문제들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현장에서 변화를 위해 뛰고 있는 청년들의 고민이 유엔에서 만났을 때, 그것은 모두가 해결을 위해 긴박하게 협력하고 있는 국제 문제가 됐다.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슬로건은 여름학교에 모인 청년들에게는 이미 일상이었다.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약속을 나눈 채 각자의 모국으로 돌아간 100명의 청년들이 앞으로 일궈갈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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