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성엽 기자
사회부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주민등록번호 시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부여되는 13자리 영구불변의 숫자로 모든 사회활동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제도이다. 이 기형적인 개인식별체계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국민을 완벽히 감시, 통제해 독재체제를 더욱 견고히 하기위해 도입된 제도로 도입 당시부터 반민주적이고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정보화 사회의 도래 속에서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며 더욱 우리 일상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그에 따라 개인이 어디서 무슨 통화를 했는지, 어디서 무슨 물건을 구입했는지, 심지어 자유롭고 열린 공간이라 믿었던 인터넷 상에서도 나의 행적이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된다.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포장된 주민등록번호를 자신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특혜정도로 이해해서일까? 우리나라 국민은 주민등록번호가 지닐 수 있는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한 듯 보인다. 주민등록증의 발급은 마치 성인식이라도 되는 것마냥 친구, 가족들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몇 백원의 포인트를 얻기 위해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가족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실명인증을 하는 모습이 우리의 현주소다. 이는 정부의 국민식별번호 도입 노력이 수십 년 째 전국적 규모의 국민들의 저항으로 무산되고 있는 해외의 여러 나라들과 사뭇 대조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감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첫 번째는 권력의 차원에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상시적, 강제적으로 수집하는 경우 발생한다. 두 번째는 국민 스스로가 복리를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전자의 경우보다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감시라고 하면 대체로 전자의 경우를 떠올리기 때문에 국민들은 후자의 경우를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감시 사이에는 장벽이 없다는 점이다. 후자의 감시가 결국 국민을 통제, 억압하는 권력의 감시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민간인 불법사찰, 미네르바 사건이다. 효율적이라고만 생각해 무심코 사용하던 주민등록번호가 국가에게는 개인의 일거수일투족과 온라인상에서의 활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고진감래가 아닌 감진고래가 될 수도 있음을. 국가의 감시에 익숙해져 저항조차 하지 못한 다면, 결국 국가에 종속돼 쓴 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