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희 시간강사
아동가족학과
 82학번인 나는 지난해 대학입학 30주년을 맞아 대학친구들과 재회하게 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대학시절의 추억을 하나둘씩 끄집어 내게 되었다.
 
우리들은 각기 다른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겉모습은 많이 달라진 듯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입에서 연신 터져나오는 말은 “어머 어머 너 어쩜 옛날 하던 짓과 똑같다”이다. 말투, 사소한 몸짓, 개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사고방식 등. 옛날 모습 그대로인 특성들이 만남을 거듭할수록 점점 두드러지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여과없이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분명 30여 년의 세월은 우리들을 다르게 변화시킨 것들이 있다. 그 중에 우리를 가장 편하게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경쟁심과 경계심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 때 그 시절 우리들 각자는 마음속으로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겉으론 아닌 척하며 속으로 아팠던 그때의 우리는 그것을 서로 나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각자만이 지닌 열등감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리도 친구들은 나보다 더 똑똑해 보였는지. 왜 그리도 친구들은 나보다 더 풍요로와 보였는지. 그때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과 상처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만큼 열려 있지 못하고 아프면 아픈 만큼 더욱 더 무장된 겉모습을 치장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의 길을 찾은 듯하다. 우리가 가야 할 종착역은 아직 멀지만 우리 모두에게서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자신의 노선을 발견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안정감이 기반이 되어서일까? 우리들은 자신의 아픔, 고민, 그리고 모자람에 대해 여유있게 말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삶에 대해 두렵다기보다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노출이 부끄럽다기보다는 진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러한 부족함의 공유야말로 우리들이 친구라는 끈끈함을 더욱 공고히 해 주고 있다. 아주 큰 수술로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친구조차 삶의 가치에 대해 우리를 새롭게 각성시켜 주고 있으며, 친구들 역시 그녀에게 응원을 보내며 우정이라는 삶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걸어왔던 인생의 길은 서로 달랐어도, 우리들은 자신의 에고를 깨뜨리는 체험을 거듭하며 자신과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는 법을 배웠고,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현재 이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우리들은 왜 그 시절 그때 우리가 이렇게 함께하지 못했는지 아쉬워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서로 격려하며 서로 위로해 줄 수도 있었으련만. 우리들 모두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무더위가 막바지에 이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우리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살랑 흔들려고 할 때, 자신의 벽을 허물고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유로움을 가져보면 우리의 인생이 좀 더 풍요로와지지 않을까. 14여 년 간의 지난 수업시간을 되돌아 보아도, 수업동기들과 수업시간에 마음을 열고 함께함을 경험한 학생들의 종강 날 환한 얼굴빛으로 변하는 모습이 ‘아 이것이 함께 하는 삶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열린 사회를 향한 작은 출발은, 내가 먼저 내 마음을 열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과 소통하는 삶의 체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닐지․․․.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우리 친구들에게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필자가 여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느꼈던 타 대학 학생들의 인간적인 따뜻한 모습과 견주어 볼 때, 관악에 있는 친구들이 이러한 따스함을 좀 더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몇 번씩 가졌었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우리와 똑같은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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