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호 박사과정
외교학과
 21세기는 한국국제정치의 세기다. 밖의 객관적 변화와 한국 안의 능력의 성장이 만나는 유례없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 시리아 공습을 놓고 고민하는 미국은 더 이상 단극질서를 주도하던 자신감 넘치는 제국(帝國)의 모습이 아니다. 경제회복, 재정적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의 부상을 직면한 미국은 결코 또 한 번의 중동개입을 감내할 여유가 없다. 미중관계는 이제 미국 전략의 최우선 변수로 자리 잡았다. 지난 6월 중국과 미국의 정상은 8시간에 걸쳐 미중관계 40년 간 유례없는 특별한 만남을 갖고 이 자리에서 미국은 중국을 질서의 동반 설계자로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세력균형의 새로운 변화는 국제정치의 행위자의 다양화를 초래하고, 이것은 한국국제정치에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위의 회담에서 미국은 중국을 포섭하여 동아시아 질서를 재건축하기 위해서 4차원의 네트워킹 전략을 구사할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우선 동맹을 주춧돌로 삼고 그 무대 위에서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자 한다. 나아가서는 그 힘겨루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그 위에 지역기구들와 경제 네트워크의 안전망을 만들어 아시아 국가들을 물샐 틈 없이 묶어 두고자 한다. 비록 미국의 전략이라는 흑심이 배후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러한 다양화 자체가 한국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고, 이는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당시 한국의 공동설계자(co-architect) 지위가 언급된 것에서 확인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권력의 균형이 변화하면서 그동안 지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자유주의적 가치들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해석의 다양성이 나타나고, 이러한 가치들에 가리워져왔던 다른 문화권의 가치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중국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미 유교적 책임관에 입각한 새로운 의미의 국가 간 평등성의 개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디어의 떨림은 비록 그 시작은 조그마할지라도 무한한 파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중견국 한국은 정치경제의 제도에서 서구의 기준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기저인 문화와 사상에서는 독특한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이미 한국 출신의 음악가들 중에서는 이러한 복합성을 활용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연주를 보여주고 있는 20대들이 있다. 시인 김지하는 이 새로운 한국의 가능성을 ‘아시아 네오르네상스’라고 일컬었다.
 
그렇다면 한국국제정치는? 그 음조는 훨씬 차갑고 삼엄하지만 이미 한국국제정치의 안과 밖의 합주는 진행중이다. 국제정치학계에서도 서서히 한국학파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고, 지난 복합외교에 신뢰외교로 정부도 한국외교의 새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관악의 20대들도 이 국제정치의 꿈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취업, 스펙, 혹은 과거의 이념, 이러한 사슬에 얽매여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이 오케스트라의 감동을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든다. 국제정치의 꿈은 한국(韓國)이라는 국(國)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특히나 한창 열정으로 넘칠 20대에게 이 꿈은 더더욱 절실하다. 관악에서 울려펴질 한국국제정치의 새로운 연주가 한강을 타고 세계정치의 바다에 아름다운 파문을 그리게 될 날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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