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 500주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다시 읽기

올해는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이 발간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정확히 하자면 책이 완성된 것은 1513년이고, 출판사에서 인쇄되어 나온 것은 1532년이다. 권모술수를 옹호하고 악을 설파하는 저서로 낙인찍혀 온『군주론』은 출판 당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교황청은 이 책을 1559년 금서목록에 포함시켰다. 아울러 악명 높은 저서의 저자는 후대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 같은 문필가들은 물론 볼테르(Voltaire) 같은 철학자 그리고 심지어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Friedrich der Große) 같은 정치인들도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비도덕성을 비난하였다.

▲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 5. 3 - 1527. 6. 21)는 르네상스 말기를 살았던 정치인이자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피렌체라는 이탈리아의 도시 공화국에서 외교와 군사업무를 맡아 보았다. 그 기간은 1498년에서 1512년까지였다. 이 시기는 메디치가가 피렌체를 지배하다가 잠시 권력을 잃고 공화정이 성립되었던 기간이다. 피렌체는 특히 여러 가지 정치적 분란과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내적으로는 공화파와 메디치파 간 및 공화파 내부의 분란이 끊이지 않았고, 외적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 같은 강대국들의 침입 속에서 다른 이탈리아 국가들의 영토 다툼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대사로 파견되는 귀족들을 수행하여 각국의 정세를 보고하였다. 군사업무는 처음에는 용병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제안으로 성사된 자국군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외교와 군사업무는 국가의 유지와 보존에 핵심되는 일로서, 이 일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힘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강대국들의 전장이 되어 버린 약소국의 공무원으로서 힘과 권력에 대한 사고는 그의 정치 저술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군주론』은 각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리 읽혀왔다. 공화국이 번창하여 시민들의 긍지가 높았던 나라에서 『군주론』은 군주 혹은 폭군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계몽서로 해석되었다. 반면 내분으로 인해 통일된 국민국가의 형성이 늦었던 나라에서 『군주론』은 혼란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전파하는 저서로 읽혀졌다. 시민의 힘이든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권력이든 마키아벨리의 주관심사가 권력과 관련된다는 것을 수많은 독자들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군주론̓이라는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지금까지 독자들은 군주 개인의 권력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개인적 권력뿐만 아니라 그것과 국가의 힘과의 상관관계를 논하고 있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는 개인이 가지는 역량의 상황구속성을 강조한다. 이는『군주론』4장과 6장에서 잘 드러난다. 지도자의 뛰어난 역량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없는 기회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호기를 놓치지 않고 잘 잡는 것이 군주의 역량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회는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급변하는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변화를 특징으로 가진다. 따라서 군주는 그러한 상황변화에 맞게 자신의 행동양식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18장의 초반부는 상황의 급변성에 자유자재로 대처해야 하는 군주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싸움의 방법에는 ‘법’과 ‘힘’이 있는데, 전자는 인간에게, 후자는 짐승에게 합당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세계에서 법만으로는 많은 경우 불충분하기에 힘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짐승의 방법도 하나가 아니다. 여우와 사자의 방법을 같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힘 대신 꾀를 가진 여우는 사자처럼 행동할 수 없으며, 힘이 센 사자는 여우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꾀가 필요할 때와 힘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능력, 즉 꾀와 힘을 같이 가지고 필요한 경우에 맞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군주는 다양한 행동양식을 몸에 지녀 유연성을 함양해야 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말한다. 25장에서 그는 인간은 자신의 기질이 완고할 뿐만 아니라, 성공한 사람은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행동양식을 확신하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행동양식의 비유연성 때문에 가변적인 상황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군주나 지도자의 역량은 그만큼 불안정한 것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권력은 그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나옴을 강조하고 있다. 군주 권력의 토대로서 인민의 지지(7장, 9장 등)와 그들로 구성된 자국군에 대한 강조(12장, 13장 등)는 군주의 권력은 개인이 수중에 장악한 힘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암시한다.

나아가 군주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유연성의 한계는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다양한 행동양식의 배양이 가변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훌륭한 능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공동체 속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동체의 활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군주론』의 대미를 장식하는 26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공동체의 활력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이탈리아의 군주들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이탈리아의 인민들에게는 역량이 잠재해 있었지만, 정작 지도자들에게는 역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 자신의 조그만 권력에 심취해 오만불손했던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법과 제도를 창안해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소홀하여 강대국들의 먹이가 되었던 것이다.

활력은 잠재해 있으며 관계적인 것이다. 그것은 구성되어야 한다. 지도자의 역량은 바로 공동체 구성원들의 재능계발과 발휘가 자신의 권력의 기반임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과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군주 개인의 유한성은 권력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집중하는 것을 통해 극복할 수 없다. 권력은 손에 쥐려고 하는 순간 작아지기 때문이다. 권력은 관계적이며, 의존적이다. 인간이 자원이고, 그들의 관계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활력의 근원이다. 마키아벨리는『군주론』을 통해 당시와 미래의 군주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란 나의 권력이 아니라, 우리의 권력이 중요하고 공동체의 활력이 나와 우리의 생존과 발전의 근본임을 볼 줄 아는 자이다. 그것이 바로 활력의 리더십인 것이다.

김경희 교수
(성신여대 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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