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현승 탄생 100주년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지난 28일(토) 광주에선 ‘다형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가 주관한 김현승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학술행사에서는 ‘김현승의 고독’, ‘김현승 시의 현재성’ 등이 토론됐고 그의 시 「절대고독」이 새겨진 표지석 제막식이 열리기도 했다. 세기가 바뀌어서도 김현승은 ‘고독의 시인’으로 이해되고, 그의 ‘고독’은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스스로도 “고독을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 예술의 활동이며, 고독 속에서 나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의 대사회적인 임무까지도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김현승 시의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는 ‘고독’이라는 단어에는 ‘외로움’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신을 잃고 얻은 인간의 실존적 고독

그동안 김현승의 시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주로 해석돼왔다. 그의 시에 ‘기도’, ‘주여’ 등의 단어가 자주 나타날 뿐만 아니라 김현승의 생애 역시 기독교와 깊이 관련돼있기 때문이다. 1913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에 기초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기독교 학교인 숭일학교 초등과, 숭일중학, 숭실전문 문과를 차례로 다니며 그는 청교도적 소양을 다져갔다. 숭실전문 시절 양주동의 추천으로 등단한 후 광복 전까지를 그의 초기 시작(詩作)기로 보는데, 이 시기의 시들에는 신앙적 요소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풍의 자연 묘사가 두드러진다. 광복 후 1946년부터 김현승은 본격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시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김인섭 교수(숭실대 문예창작학과)는 이때를 가리켜 “「옹호자의 노래」가 대변하듯 청교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신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던 시기”라고 말한다.

모든 신앙들이 입증(立證)의 칼날 위에 서는 날 / 나는 옹호자들을 노래하련다! (「옹호자의 노래」)

그런데 1960년을 전후해 김현승의 인생에 중대한 인식론적 전환이 일어난다. 일생 동안 믿었던 기독교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간단히 말하여 무조건 부모에게서 전습한 신앙에 대하여는 나는 오십을 넘어서야 회의를 일으키게 되고, 점점 부정적인 데로 기울어져갔다”고 하며 “나의 관심은 점점 천국에서 지상으로, 신에서 인간으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갈등의 순간을 포착해낸 시가 「제목」이다.

떠날 것인가 / 남을 것인가 …(중략)… // 두 손에 고삐를 잡을 것인가 / 품안에 안길 것인가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 ‘두 손에 고삐를 잡고’ 신의 무한과 영원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다. 신이 떠난 자리에는 인간의 내면만이 남고 김현승은 그 내면에서 ‘고독’을 읽어낸다.

나로 하여금 / 세상의 모든 책을 덮게 한 / 최후의 지혜여, / 인간은 고독하다! …(중략)… // 내 마음의 왕국에서 자유와 독립을 열렬히 호소하는구나! (「인간은 고독하다」)

김현승은 신으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호소하며 인간의 이성에 기댔지만, 그것으로는 인간이 살아 존재해야 할 이유조차 발견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발견한 ‘최후의 지혜’는 ‘인간은 고독하다’는 절대 명제였다. 손미영 교수(광운대 교양학부)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김현승의 신앙을 떠난 고독에 대한 천착을 루시퍼 콤플렉스로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에 맞서다 지옥에 떨어져 하반신이 어둠에 묻힌 루시퍼처럼 “김현승은 형이하의 하반신을 어둠 속에 묻고 형이상의 상반신으로 이미지를 붙잡으려는 안간힘, 즉 고독과 신앙의 길항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지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김현승의 회의와 고독은 결국 신앙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었으며 그의 절반은 항상 신앙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이때 ‘신앙을 잃은 고독’은 단순한 형벌의 의미를 넘어서 보다 고양된 신앙에 가닿기 위한 변증법적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김현승의 고독은 ‘자유와 독립’의 과정을 거쳐 ‘견고한 고독’으로, 마침내 ‘절대고독’에 가닿게 되며 그때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구원을 위한 단독자로서의 고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현승 자서전에서도 자신의 고독을 “종교에 더 완전히 귀의하고 싶은 심정의 변태적인 발로”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김현승은 타계하기 직전 오랜 고독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신에 귀의한다. 이 시기의 시들은 ‘작품의 열도(熱度)가 떨어진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기독교 신앙과 관련한 김현승의 인생으로서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로써 김현승의 삶과 시를 기독교 사상과 결부해 이해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현승은 포교적인 성격을 주로 갖는 대다수의 신앙시에서 벗어나 종교와 인간 내면의 관계를 기반으로한 ‘고독’이라는 독창적인 개념 영역을 일구어냈다. 권오만 교수는 이를 “국문학사상 유례를 구하기 어려운 정서적 체험이라는 관점에서 그 의의가 각별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의 시를 통해 불교나 노장 사상에 비해 이론적 토대가 부실했던 기독교 사상이 평론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기독교 문학의 비옥한 토양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있다.

양심을 추구하는 인간의 눈물어린 고독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견해에 따라서는 나를 가리켜 기독교에 국한된 시인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국한된 종교시를 쓰기 위하여 종교의 세계를 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문학 백서」)

김현승의 시 세계를 기독교적 맥락에서 벗어나 평가하려는 시도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최동호 교수(고려대 국문과)는 “신앙과 고독의 분리 문제는 논리의 차원일 것이며 시를 쓰던 김현승에게는 오로지 고독에의 집중적이며 헌신적인 탐구만이 필요했던 것이다”고 말하며 김현승의 ‘자기 탐색’ 혹은 ‘영혼의 모험’ 과정에 주목했다. 김현승의 자기 탐색과 영혼의 모험은 기독교 신앙과는 사뭇 다른 정신의 발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김현승은 “그(구체적 정신)보다도 더 근본적이고 기본이 되는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나는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구체적 정신’이란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어떤 주의에 입각한 정신’을 말하는데, 김현승이 추구하는 ‘인간정신’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이은규 교수(안양대 기독교교육과)는 그 정신이 바로 ‘양심’이라고 말한다. 김현승은 예수에 대해 “신의 아들이라는 종교적인 이유나 조건을 제외하고서도 그만큼 양심을 소중히 여긴 인간은 없었기에 인간 가운데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고백했다. 양심은 신앙과 더불어 그를 줄곧 지탱해온 의미였으며 그의 ‘고독’도 양심의 의미 탐색 과정에서 벌인 고투의 결과물인 것이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눈물」)

고독과 더불어 김현승을 수식하는 대표적 단어는 ‘눈물’이다. 양심을 추구하는 시인이 흘리는 눈물은 ‘정결한 눈물’이다. 정결한 눈물은 일생 동안 루시퍼의 형벌처럼 그를 괴롭혔던 고독조차 아름답게 만든다. 김현승은 “나의 내부에서 이 양심의 실재를 부정하지 못하는 한, 나의 고독이 허무주의나 퇴폐주의로 변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승의 고독이 ‘생명력 있는’ 고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굴곡보다 깊은 ‘인간정신’ 차원에서 그가 양심을 추구하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연소되고 취하여 등불을 향하여도 / 너만은 물러나와 호올로 눈물을 맺는 달밤……// 너의 차가운 금속성으로 / 오늘의 무기를 다져가도 좋을 (「양심의 금속성」)

‘눈물’과 함께 ‘양심’이라는 키워드는 김현승 시의 현재적 의미를 읽어내는 데 빠질 수 없는 개념이다. 물질주의와 정치 논리로 얼룩졌던 당대에도 꿋꿋한 눈물로 빛나던 김현승의 양심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더불어 김현승의 양심은 문학사에서 ‘참여 논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유효한 시각을 제공한다 . 이은규 교수는 “김현승에게 진정한 ‘순수’는 ‘참여’의 대극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진실한 비평의 정신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김현승이 4·19 혁명을 목도하고 그것을 시에 담는 등 사회현실에 깨어있을 때도, 그것은 유별난 노력이라기보단 그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생명에 대한 진실한 비평’즉 ‘양심’이라는 가치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이때 양심은 눈물처럼 순수한 것이며, 때문에 일반적인 순수문학 혹은 참여문학 논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김현승의 시가 시대가 흘러서도 오히려 새로운 차원에서 논의된다는 것은 그가 매달렸던 테마가 줄곧 현재성을 갖고 사람들에게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뜻한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앞으로도 그의 시적 토양에서 의미있는 연구들이 다각도로 조명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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