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으로 한 방송사에서 3부작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기획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대한민국 하위 3%의 문제 아이들을 100일간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키겠다는 것. 하지만 1부 방송이 나간 직후부터 비난 여론이 거세게 몰아쳤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기도 했던 아이들의 발언이 그대로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애들을 땅에다 묻고 그런 적도 있었어요”, “고1때 폭행 전치 8주…그냥 쳤는데 기절해 버렸어요”와 같이 자극적인 문구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제작자들은 이런 과격한 멘트를 통해 후반부에 변화된 아이들의 모습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예능 감각’에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시달리고 있을 고통에 대한 이해와 아직 청소년인 가해자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노렸던 ‘감동’은 그렇게 역풍을 맞았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문제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엽기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 있는지는 역사에 적용해보면 알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액트 오브 킬링」(2012)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학살 사건을 다룬다. 1965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은 동남아시아 공산화를 두려워한 당시 서구 국가들의 묵인 하에 100만 명이 넘는 정적을 학살했다. ‘공산주의자’라는 명목 하에 살해당한 이들은 대부분 소작농이나 화교, 지식인, 반정부 인사들이었다. 하지만 학살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학살 사건을 영화화하고자 했던 시도는 생존한 학살자들의 방해로 번번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화감독 오펜하이머는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들에게 당시를 재현한 영화를 그들을 주연으로 해서 찍겠다고 설득한 후, 그 과정을 메이킹 다큐멘터리로 찍는다. 그렇게 가해자의 시선에서 촬영된 영화에는 학살자들이 공영방송에 나와 ‘공산주의자들을 빠르고 인도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며 칭송을 받는 장면이나, 천 명을 죽인 학살자가 희생자들이 자신들을 천국으로 보내주어 고맙다며 그에게 상을 주는 장면을 촬영한 뮤지컬 판타지가 나오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는 학살자 중 한 명은 말한다. “‘전쟁 범죄’는 승자에 의해 정의된다. 나는 승자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정의를 만들 수 있다”라고. 하지만 그 ‘승자’에 의해 정의된 역사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증명할 뿐이었다.

물론 학살자 중에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결백을 주장함으로써 죄의식을 가지기 시작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도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가해자들이 스스로의 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몰카 형식의 심리치료 역할극’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반성을 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그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여전히 가해자의 권력 아래 있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현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킴으로써 윤리성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과제를 실은 어떤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 역시 ‘이념’이나 ‘팩트’의 차원만은 아닐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해보라고 요구하는 이 ‘예능감’ 충만한 교과서에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조차 부재한 것이 아닌가.

안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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