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수만 기자
사진부

새로운 것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단단한 지반 없이는 싹을 틔울 수 없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굳게 남아 있을 단단한 지반을 전통이라 부르고, 이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인간문화재라 부른다. 그들이 삶을 바쳐 지킨 전통은 문화로 꽃피우고 우리 삶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어 줬다.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인간문화재 분들을 만나며 그분들이 모두 전통을 지키기 위해 각종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아오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들의 말 하나, 몸짓 하나에도 그런 자긍심이 묻어나왔다. 구혜자 선생은 보수적 집안 분위기 속에 맏며느리로서 역할을 하면서 하루하루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침선 일을 계속 했다. 김금화 선생은 미신이라고 폄하하는 사회적 시선을 이겨내며 큰 만신이라고 불리우게 됐고 김대균 선생은 스승의 작고로 대(代)가 끊길 뻔 했던 판줄을 줄에 쓸려 엉덩이가 터져가는 노력 끝에 복원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 했다. 조금 인기 있는 기능 분야나, 예능 분야 보유자들은 사정이 다소 나은 편이지만 수요가 거의 없는 공예 관련 기능 보유자들은 정부 전승지원금 외에 생활을 이어나갈 수단이 없어 자존심을 버리고 일상용품 제작에 매달리기도 한다. 올해 전승 지원금이 인상됐지만 이마저도 생활비로 충당하기에 빠듯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어느 기능 보유자는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자신의 일을 가르치면서도, 생업으로는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기도 했었단다.

지난달 24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117호 한지장 명예보유자 류행영 선생이 지병으로 작고했다. 그는 평생을 한지에 매달려 오로지 전통 한지의 전승과 복원이라는 외길을 걸었다. 그가 만드는 한지는 국내외의 여러 사람으로부터 최고의 종이라는 평도 들었다. 하지만 국내 한지시장의 95%가 수입된 한지거나 수입 닥으로 제작되는 실정을 홀로 버티기는 힘들었다. 류행영 선생은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공방에서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전통’이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육체적으로 힘들다보니 하겠다고 자청하는 사람도 사라져 간다. 일종의 사명감으로 버텨왔던 인간문화재들은 자신의 대에서 이 문화의 맥이 끊길까 걱정하며 밤을 지새운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발현된 우리 민족의 원형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통 문화가 사라지면 이마저도 수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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