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사람은 모이고
불편한 인사는 떠나는 가신정국
완벽한 지도자로서 개인은 허구
직언 던질 수 있는 직신 곁에 둬야

▲ 정승호 학술부장

보스의 ‘심복’이 ‘배신자’가 됐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자타공인 최측근 심복이었다. 그는 2004년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하던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근 10년간 박 대통령 곁을 지켜왔으며 세간에서 ‘실세장관’으로 불리며 7개월 전 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런 그가 항명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하며 박 대통령 곁을 떠났다.

그의 직접적인 사퇴 원인은 그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시키는 방안을 청와대가 확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그는 사퇴설이 불거지던 사우디아라비아 출장 중 “복지부 장관으로서 열심히 해 보려고 했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란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다”는 묘한 말을 기자들에게 전했다. 즉, 그의 소신이 대통령의 뜻과 달랐으며 이를 견지하며 일하기가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기초연금에 관한 주무장관이자 실세장관인 그조차도 대통령과 이견을 갖고 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애초부터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의 사람이 아니라고’ 평가받았던 인물들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양건 전 감사원장은 감사위원 임명을 두고 청와대와 대립하다가 사퇴했다. 또 채동욱 검찰총장은 표면적으로는 혼외아들 논란으로 사퇴했지만 그가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을 사퇴에 이르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대통령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오래전부터 대통령의 사람’이라고 평가받았던 인물들은 다시 대통령 곁으로 모이고 있다. 지난 8월 임명된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박 대통령의 ‘7인회’에 속해 있다. 비서실장보다는 물리적 거리가 멀긴 하지만 다른 ‘원조친박’들도 복귀하고 있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으로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후보로 선출됐으며 홍사덕 전 의원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회장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그야말로 보스 곁에 가신(家臣)들이 모이고 있는 모양새다.

‘보스와 가신의 정치’는 그들의 언어에서 잘 드러난다. 김 실장은 지난 8월 첫 공식 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서 비서실장이 한가지 발표를 드리겠다”고 극존칭을 썼다. 보스의 지시에 따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즉, 이들은 대통령의 철학과 대한민국의 철학을 동일시하며 대통령이 가리키는 방향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규정하는 주의(主義)로 절대시한다.

문제는 ‘완벽한 지도자’인 개인은 허구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군주 개인의 역량은 주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변화하는 주변 상황에 맞춰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군주의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라고 말했다. 따라서 군주는 상황에 맞게 자신의 행동양식을 유연하게 바꿀 줄 알아야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는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그 자신의 기질이 선천적으로 완고하며 성공한 이들은 그 자신의 행동양식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스’ 한 명에 의지해서 국가가 운영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따라서 지도자는 상황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가감없이 직언을 던질 수 있는 ‘직신(直臣)’들을 곁에 둬야 하며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런 신하들은 지도자의 철학과 조금은 거리를 둔 채 지도자의 결정에 삐딱한 시각을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존재는 가신들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불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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