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구가 새겨지면서 시작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는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파일럿이 꿈이었던 소년 지로는 지독한 근시로 그 꿈을 접고 대신 비행기 설계사의 꿈을 키우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비행기 제작회사에 입사한 지로는 오로지 세계 제일의 비행기를 만드는 데에만 전념한다.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 위세를 더해 가면서 침략전쟁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지로는 해군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주력기종인 ‘제로센’ 제작에 몰두한다. 한편, 휴가지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폐결핵에 걸려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요양원에서 치료 중이던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생의 마지막을 지로와 함께 보내기 위해 그가 있는 도시로 내려온다. 그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면서 지로는 ‘제로센’의 막바지 작업에 열중한다. 여러 번의 실패와 수정 끝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제로센’의 시험 비행이 있어 지로가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이별의 편지를 남겨두고 그의 곁을 떠난다.

▲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이 영화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우익 쪽에서는 일장기를 단 전투기들이 추락하는 장면이나 간간이 드러나는 반전 메시지를 두고 비판을 가했고, 반대편에서는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사용한 ‘제로센’을 만든 주인공을 미화하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런 논란이 충분히 예상됐겠지만, 영화는 그저 자신의 꿈을 좇아 묵묵히 걸어간 한 남자의 삶이 격랑의 시대에 어떻게 각인돼 갔는지 관조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애절한 그의 순애보에 눈길이 간다. 난치병에 걸려 죽어가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를 위해 그가 딱히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녀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그녀를 보면서 감독의 모국인 일본이 겹쳐졌다. 몹쓸 병에 걸려 쓰러져가지만 외면할 수도 떠나갈 수도 없는 조국. 그리고 국가권력의 폭주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의 무력감.

미야자키 감독이 태평양전쟁 종전 후 70년 가까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가 뭘까. 장기간의 불황,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재해 이후 급격히 우경화되는 현재 일본의 모습과 1923년 ‘관동 대지진’에 이은 세계 공황, 그 속에서 가속화되는 군국주의 일본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며칠 전 도쿄에서 열린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는 일본의 자위권 행사를 위한 법률 개정, 예산 증액 등을 예고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평화헌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킬 나치식의 대체 방안을 궁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와 친선의 제전인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속 지로가 열심히 일했지만 불행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맹목적으로 달려가면 불행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친 김에 영화의 엔딩도 다음과 같은 발레리의 시구로 맺었으면 어땠을까.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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