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1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체로 어린아이와 산모들이었다. 세계 초유의 사건에 대해, 기업과 정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올해,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경쟁력을 해친다는 재계의 요구를 반영해 법안을 수정한다. 또 환경부 장관은 피해자 구제법을 반대하며 “현대 과학기술로 알 수 없었으니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친환경’, ‘안전함’, ‘테스트 통과’와 같은 문구를 그대로 믿은 소비자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총선의 방송 토론회에, ‘침대는 과학’이라는 카피로 유명한 광고인이 여당의 대표로 출연했다. 명성에 걸맞도록 빼어나게 홍보하던 그에게 토론자가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그거야 제가 모르죠”라는 답을 한다. 어쩌면 그 정당에게 정책과 광고의 차이는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라는 선거 공약이 집권 이후 사라지고 기초연금과 같은 공약들이 포기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국가 정책과 광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이전 정부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22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4대강 사업은 엄청난 경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선전됐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나듯, 34만 개가 공언됐지만 실제로 2천 명 일자리가 만들어진 결과에서 보듯, 사업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1조원에 달하는 건설사 담합이 적발되는 등 각종 비리가 저질러졌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관련 공무원과 전문가들은 승진과 훈장으로 보답받았다.

이전 정부에서 다반사였던 ‘몇 십조짜리’ 경제 가치 창출 중 하나는 UAE 원전 수주였다. 그런데 수출 원전의 모델인 신고리 3호기의 핵심 부품 중에 위조된 가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진품을 가리는 감독기관이 오히려 위조품을 만들어낸 충격적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납품 비리와 수주 로비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 100여 명이 기소됐고, 3호기 준공은 내년 8월로 연기됐다.

최근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은 3호기를 위한 것이다. 준공이 연기됐음에도, 공사 강행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왜 765KV여야 하는지”와 같은 핵심적인 쟁점에 대한 논의는 들리지 않는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유독 765KV 송전선 비중이 높으며 심지어 아예 설치하지 않는 국가도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가려진 채, 인체 유해성 여부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만 들려온다. “모르기에 안전하다”는 말은 과학마저 광고의 차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또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거짓을 간파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된 듯하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광고를, 정부를, 과학을 믿는 이들의 순진함을 냉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믿지 않는 것’에서 멈춘다면 불충분하다. 아니 더 위험할 뿐이다. 더 이상 참과 거짓을 애써 따져 묻지 않는 것이야말로, 타인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만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이리라.

화학물질과 전자파 그리고 방사능처럼, 그렇게 우리를 감싸고 있는 무수한 삶의 조건들 앞에서, 인간의 삶을 지키려는 노력들이 서로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나의 삶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우리 모두는 서로의 외부세력이다.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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