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의보감』이 발간된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1613년 간행된 동의보감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의서였으며 현재까지 한의학의 간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더불어 2009년에 의서로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이어져왔다. 동의보감은 1613년 이전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된 정치적·사상적 흐름들을 반영하고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그 해결책은 현재 우리 사회의 요구와도 맞닿아있다.

‘민본’의 정치이념을 구현한 『동의보감』

1613년 간행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민본(民本)정치’ 사상을 담은 의학서다. 동의보감은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허준의 개인적 의지에 따라 편저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 이면엔 ‘왕의 명령’이라는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 조선건국기부터 왕들은 의료제도 개선과 의서편찬 작업에 힘을 쏟았는데 이는 ‘민본 정치’라는 조선 정치의 근본이념에 따른 것이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혜민전약국을 설치해 질병이 생기면 누구나 이곳에 와 무엇이든 구할 수 있게 됐다”며 의료제도 신설이 백성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의서 편찬 작업도 민본정치의 일환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전개됐으며 조선 초기 의서들은 특히 ‘향약(鄕藥)의 보급화’를 요구받았다. 향약은 중국의 약재인 ‘당재(唐材)’와 대비되는 우리 본토에서 나는 약재를 말한다. 그런데 당재는 구하기 어려운 것이 많고 값도 비쌌으므로 ‘민본’의 기능에 충실한 의서라면 향약을 연구하고 보급해야 했던 것이다. 김호 교수(경인교대 사회교육과)는 “향약론의 완성을 위해 향약재를 당재와 비교, 검토하는 작업은 17세기 초반까지 계속됐다”며 “세종 대의 『향약집성방』, 중종 대의 『촌가구급방』, 명종 대의 『고사촬요』 등의 의서로 나아가면서 당재를 향약재로 대체하는 처방들이 늘어갔다”고 말한다.
동의보감 역시 향약을 연구하고 보급함으로써 백성들의 쉬운 치료를 지향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허준은 “본초(한방 약물)는 방대하고 번잡하며 여러 의가(醫家)의 논의가 한결같지 않을 뿐 아니라 요즘 (조선)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약재가 반이나 된다”며 약초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동의보감 「탕액편」의 집필 의도를 밝혔다. 즉, 조선과 중국 여러 의가의 본초학적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함과 동시에 ‘향약의 보급’이라는 목적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상인 교수(경희대 한의학과)는 허준이 중의학의 대표적 본초학서인 『증류본초』를 인용하는 과정을 예시로 들며 동의보감에서 향약이 어떻게 두드러지는지 밝힌다. 이 교수는 “인삼 조문에서 『증류본초』는 중국의 ‘태산’에서 자생하는 인삼의 특징을 밝혔으나 동의보감엔 산지를 구별하지 않고 조선 인삼의 특징이 거론됐으며, 당귀 조문에서도 조선 자생 향약의 특성으로 바꿔 기록됐다”고 말한다. 카이스트 한국과학사문명사무소 오재근 연구원도 “『증류본초』 인용 과정에서 당귀를 향약명인 ‘승엄초불휘’로 기재하고 그 내용도 향약을 기준으로 취사선택했다”고 전했다. 약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흡수하고 이를 선택적으로 인용·편집한 동의보감에 이르러 조선 초부터 계속되던 ‘향약론’이 정립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16세기 말부터 동의보감이 편찬되기 전인 17세기 초까진 역병과 임진왜란 등의 재난이 겹쳐 국가적 의료사업 및 의서 편찬은 더욱 시급한 정치 사안이 됐다. 『선조실록』의 통계치에 따르면 임란 전 한성부 인구는 약 8만 명 이상이었으나 1593년 조사된 인구는 약 4만 명에 불과했다. 동의보감이 1596년 편찬을 명령받고 정유재란으로 작업이 중단됐다가 곧바로 다시 착수 명령을 받은 것도 이런 절박한 사회상을 반영한다. 특히 어린 ‘소아(小兒)’와 산부인 및 산후 부인을 지칭하는 ‘부인(婦人)’ 같은 건강에 취약한 집단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동의보감은 이런 사회적 요구를 고려해 부인과 소아의 건강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허준은 “비록 장부를 열 명 치료하는 의사가 있더라도 한 사람의 부인을 치료하기가 더욱 어려운 일이고, 또 열 명의 부인을 치료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소아를 치료하기가 더욱 어렵다”며 소아와 산부인 치료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했다. 그 결과 허준은 동의보감 「잡병편」에 부인과와 소아과를 따로 배치하여 자세한 내용을 다뤘다. 이에 전영주 선임연구원(한국한의학연구원)은 “현대의 산부인과 분야에 해당되는 병증들을 총망라한다”며, 성현경 교수(대전대 소아여성센터)는 “근대 소아과학의 중요한 각종 병증을 거의 포함하고 있다”고 평했다.

‘삼교회통(三敎會通)’의 의철학을 구현한 『동의보감』

16세기 중반부터 조선 의학계에선 ‘조선의 의서’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났다. 세종 대의 『의방류취』가 당대 중국의 선진 의학서를 분류하고 정리하긴 했으나 그 후로 새롭게 발전한 명대와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 금나라와 원나라 시대의 중국의 4대 의가)의 중국 의학을 조선 나름의 시각으로 담아낼 조선의 의서가 부재했던 것이다. 때문에 당시 의학자들은 최신의 의술을 익히기 위해 중국 의서에만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조선의 의서’에 대한 갈망을 동의보감은 이름자 그대로 ‘동의’의 ‘보감’으로써 구현했다. 허준은 동북아시아의 의학을 중국의 북의와 남의, 그리고 자신의 ‘동의’로 구분한다. 이런 자신감은 동의보감이 단순히 최신의 정보를 망라했다는 사실을 넘어서 인용자 혹은 편집자 나름의 독자적인 편성 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 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향약의 보급’과 관련한 것이고 또 하나는 허준의 의철학에 관한 것이다. 허준은 인체가 정(精)·기(氣)·신(神) 으로 이뤄져있다는 의철학을 바탕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도가의 수양법인 ‘양생(養生)론’을 삼교회통의 관점에서 제시하는 등 독자적인 편성 체계를 꾀한 것이다.

동의보감에 반영된 ‘삼교회통(三敎會通)’ 사상은 저자 허준의 행보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허준과 그의 스승 양예수 등 의술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을 ‘유의(儒醫)’라 불렀는데, 이들을 주축으로 동의보감이 편찬됐다. 그런데 ‘유(儒)’와 ‘의(醫)’는 자연스럽게 합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부터 전통적으로 의학은 도가적 성향을 띠었기 때문이다. 김호 교수는 “여기서 16세기 중후반 성리학을 중심으로 도가, 불교, 양명학 등의 이단에 대한 관용이 확대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준이 살았던 경기 이북 지역 사상의 흐름은 유학을 중심으로 도가와 불교를 포섭하는 삼교회통이라는 비교적 개방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도가의 양생법에 대해서도 유학자 나름의 수용과 논의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유의인 허준은 이때 논의된 문제의식들을 동의보감의 의철학에 반영한 것이다.

 

동의보감 맨 첫머리의 「신형장부도」(사진①)는 정(精)·기(氣)·신(神)이 인체를 구성하고 운행한다는 동의보감의 의철학에 근거한 그림이다. 그림에서 머리와 척추를 지칭하는 ‘수해뇌’, ‘요척’ 부분은 물질적 원천인 정이 포함된 것이며, 기는 몸 안에서 그 원천을 흐르게 하는 에너지이며, 신은 그 흐름의 방향을 주재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 그림은 정·기·신의 작용을 바탕으로 오장육부가 형성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신동원 교수(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는 “서양 해부도가 기계론적 해부도라면, 신형장부도는 철저히 기능적 해부도”라며 “여기선 구조를 상세히 그려내는 것보다 몸 안의 기(氣)가 어떻게 비롯되며, 그것이 어떻게 오장육부 등 생리 작용과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신형장부도」의 정·기·신 개념은 원래 전통적인 도가사상과 관련한 것이었다. 도가사상에서 정은 땅의 기운, 기는 사람의 기운, 신은 하늘의 기운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는 천지 자연의 구조와 동일한 원리로 구성된 것이 되며 ‘자연을 닮은 인간’이 이상적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허준은 “인간의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받았고 발이 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는 말로 천지와 인간의 상응구조를 강조한다. 도가의 ‘양생’이란 바로 원래 자연과 상통하는 인간이 자연원리에 따라 정·기·신 의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의보감에서는 정·기·신 및 양생 개념이 전통적인 도가사상보단 성리학적 인식론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이는 유의였던 허준이 도가 사상을 유가적 입장에서 해석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선 “태초는 기의 시작이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허준이 영향받았던 서경덕의 이론과 상통한다. 서경덕은 우주가 기로 채워져있으며 만물은 기의 발현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유학자들에게 양생론이란 모든 정신적, 육체적 활동의 에너지원인 기를 평시에 미리 보충해놓는 작업이었다.

김호 교수는 구체적으로 이기론(理氣論) 논쟁 등 성리학적 인식론을 바탕으로 양생을 분석했는데 예를 들어 이황과 같이 ‘이(理)’를 중시한 학자는 ‘양기(陽氣)’를 보충하는 것보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이’를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이이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를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기준으로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진원지기(眞元之氣)’로 구분해 정신적 수양인 ‘호연지기’를 강조했다. 대부분 유학자들은 호연지기를 강조했으나 보다 의학자의 입장에 선 허준은 운동이나 식습관 등을 통해 실질적인 육체 보존을 도모하는 ‘진원지기’를 강조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그 밖에 허준은 「사대성형」이란 부분에서 “불교에서는 사대(四大)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이 화합하여 사람이 된다”고 말하며 불교철학을 인용하는 등 삼교회통의 정신을 구현했다.

『동의보감』의 현재적 이용

동의보감은 단순히 역사서적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현대 한의학에서도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당대의 필요에 따라 발달했던 부인과와 소아과 영역에서 그 임상적 효용성이 두드러진다. 전영주 연구원은 “동의보감 부인문은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처방들을 수록해 조선 후기의 『의문보감』, 『제중신편』, 『방약합편』 등의 저작들 및 현대 한국 한방부인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때문에 많은 현대 의학연구자들이 동의보감 부인과의 처방을 현대적으로 고증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동의보감의 ‘온경탕(溫經湯)’ 처방이 에스트로겐 분비를 조절하고 배란을 촉진함으로써 배란이나 월경의 병리병화를 개선시키는 활용 가치가 있는 처방임이 밝혀졌고 동의보감의 ‘분심기음(分心氣飮)’ 처방이 혈장 ANP 농도를 증가시켜 전해질 배설량을 유의성 있게 증가시킨다는 사실도 논의된 바 있다.

소아과 영역에서도 동의보감의 처방에 대한 연구 및 응용이 이뤄졌다. 성현경 교수는 “소아는 성인에 비해 약물의 영향에 취약하기 때문에 최대한 적은 종류의 약물이 바람직하다”며 “동의보감의 ‘단방(單方)’을 현대 한의학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단방은 한 가지 질병에 한 가지 약재를 사용한다는 것으로서 향약의 보급과 마찬가지로 일반 백성들의 저렴하고 용이한 치료를 도모하기 위한 처방이었는데 현대 한의학에선 단방 처방이 많지 않다. 더불어 성 교수는 “소아의 체질이나 사회적 환경도 크게 변화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실용적인 측면에서 동의보감을 응용해야 한다”며 동의보감 활용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의학지식 외에도 동의보감의 사상적 측면 역시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 편찬과정에 담긴 ‘민본 정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9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주요한 이유도 ‘공공의학’적 성격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복지를 책임지고 다스린다는 정신은 복지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현 시점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될 수 있다. 한의학계에서도 시장중심적 교육에서 벗어나 공공의료 정신을 배양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학과)는 “한의대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고 말한다.

동의보감의 ‘예방의학’ 정신도 현대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예방의학이란 질병이 발생한 후 그것을 고치는 서양 의학적 발상과 달리 ‘양생술’을 바탕으로 평시에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유지해 질병에 대비하자는 발상이다. 동의보감을 현대적으로 연구하는 고전평론가 고미숙 작가는 동의보감에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과 태도까지 염려한 것은 곧 몸과 삶과 생각이 하나되면서 의학과 인문학이 접할 수 있는 지점이다”고 한다. 동의보감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모든 책은 시대가 지나면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말과 함께 동의보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흐름도 있다. 김동영 한의사는 “동의보감을 곧이곧대로 맹신하고 추켜올리기에 급급한 경향은 한의학의 진정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고 지적한다. 그는 동의보감이 원본을 부정확하게 인용하고 잘못된 이론을 끌어오는 등 의서로서 오류가 많고 정밀하지 못한 점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동의보감이 인용한 중국의 『황제내경』에선 ‘소위 오장이란 정기를 저장, 보존하는 곳으로 이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 고로 (오장이란 정기가) 가득 차되 실체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한다. 그 뒤의 문장을 고려하면 ‘실체’란 보이지 않는 정기와 대비되는 실체적 물질임이 명확해지고 이 문장은 오장이 실체적 물질로 차 발생하는 현대의 심근경색, 신부전증 등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의보감은 인용 과정에서 몇 글자를 누락해서 ‘오장은 정기가 차는 곳으로 가득 차되 실하지 않다’는 뜻이 돼 마치 ‘정기가 너무 많으면 좋지 않다’는 식으로 와전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가 말하는 더 큰 문제는 ‘민족적’ 담론에 갇혀 동의보감의 단점을 직시하지 않고 그것에 큰 영향을 미친 중의학을 경시하는 한의학계의 주류 경향이다.

400년이라는 역사를 기념하는 오늘날 동의보감에 제기되는 비판을 수용하면서 발전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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