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005년 울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창녕의 북경남 발전소로 수송하기 위해 송전탑을 밀양 곳곳에 세우는 공사를 계획했다. 2008년 7월부터 공사가 본격화 됐지만 안전성, 재산권 침해 등을 우려한 주민의 반발로 올해 5월 공사가 중단됐다. 하지만 지난 2일(수) 공사가 126일 만에 재개되면서 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공사 재개 다음날인 3일, 『대학신문』은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는 밀양 단장면 바드리마을에 들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밀양 시내를 벗어나 단장면 바드리마을로 향하는 길 곳곳에 보이는 기동경찰 차량들, 송전탑 반대 현수막은 이곳의 팽팽한 긴장감을 대변했다. 바드리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765kV 송전탑 OUT’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사람들과 일렬로 선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바드리마을 인근에 있는 84번, 89번 송전탑 건설현장으로 진입하고자 했으나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현장엔 울산, 경북 등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노동당 울산시당 권진회 위원장은 “송전탑 갈등의 원인은 고리 핵발전소”라며 “원전 건설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감이 커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경북 군위에서 온 고등학교 2학년 남어진 학생은 “SNS를 통해 송전탑 문제를 듣고 마을 주민을 돕기 위해 왔다”며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며 느낌을 전했다.

마을 주민조차 통과가 어렵다는 경찰의 벽은 오직 기자에게만 출입이 허가됐다. 마을 내부로 향하자 진을 친 경찰 앞으로 사람들이 움막을 설치한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바드리마을과 이웃한 동화전마을, 용회마을 주민이었다.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 씨(64)는 이틀 째 움막 옆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구미현 씨는 “바드리마을 주민들은 한국전력과 합의했기 때문에 이웃 마을인 우리들이라도 힘들게 싸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 사진: 송승환 기자 songseung88@snu.kr


좀 더 걷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마을로 향하는 길엔 진입금지 철창이, 다른 길엔 진흙탕 너머로 공사 현장임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산 중턱 아래의 팽팽한 긴장감은 다른 세계 이야기인 듯, 84번 송전탑 공사는 느긋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반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고압 송전선의 안전성’ 때문이다.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농작물은 물론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반대 측은 지난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고압 송전선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 자기계를 발암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전의 ‘가공송전선로 전자계 노출량 조사연구’라는 보고서에도 765kV 송전선로 80m 이내에선 어린이 백혈병 발병률이 3.8배 높아지는 전자파가 연중 방출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송전탑 전자파가 암, 백혈병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 한전 측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항”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한국전력 밀양특별대책본부 박장민 대외홍보조정관은 “송전탑 전자파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확언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마을과 400m이상 떨어져 있어 전자파 세기도 미약하다”며 “이미 역학조사를 마쳤고 전문가 공청회도 여러 번 마친 시점에 이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억지”라고 밝혔다.

두 번째는 재산권 침해로 인한 보상문제다. 한전 측은 공사로 인한 재산권 침해는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조정관은 “마을 별로 보상금이 지급되고 마을 마다 가구 수가 천차만별이라 보상금액이 차이난다”며 “보상금의 기준은 철탑의 개수, 철탑과의 거리 등 객관적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겨우 45만원~950만원 정도의 돈을 주고 살던 고향을 떠나라 한다”며 “고향을 잃은 슬픔은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데도 자본 논리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며 항의하고 있다.

세 번째는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정부와 한전 측의 일방적 태도이다. 이에 대해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는 “부북·상동·산외·단장 4개면 27개 마을 실거주자와 토지 소유자, 상속자 등 마을 주민 2,962명이 한전의 보상 지원안에 반대서명을 했다”며 “주민들이 반대하는 공사를 강행하는 것도 모자라 반대 집회 어르신들을 연행한 것은 공권력을 동원해 우리의 목소리를 짓밟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한전 측은 “지난 8년 동안 갈등조정위원회 23회, 보상협의회 10회, 국회토론회 6회, 대화위원회 18회 등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를 듣지 않은 채 반대 측은 자기주장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10여일이 지난 지금,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시행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집회 과정의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현장조사에 착수했으며 국회 상임위에서도 갈등 해소를 위한 관련 법안 이 통과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대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 해결이 쉽진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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