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관악을 받쳐주는 그들의 이야기 ③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인 오전 10시의 감골식당. 몇 백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은 바쁘게 돌아간다. 식재료를 지지고 볶는 소리로 가득한 주방의 가장 안쪽에서 흰 가운을 입은 영양사가 나온다. 직접 요리를 하진 않지만 재료 검사부터 식권 수합에 이르기까지 주방장 못지않게 바쁜 생협의 영양사들. 『대학신문』에서는 주방 깊숙한 곳, 영양사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아봤다.
 
▲ 사진: 전근우 기자 aspara@snu.kr

◇식단에서 식탁까지: 영양사의 하루=영양사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에 구입 식자재 목록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제가 끝나면 식재료를 점검하는 검수 과정에 들어간다. 식재료는 매일 아침 하루치씩 도착하는데 대파는 손가락 굵기 이상이여야 하고 상추나 쌈 채소의 경우 흠집난 곳이 없어야 하는 등 각각의 재료에 따른 기준이 있다. 기준에 어긋나는 식재료들은 바로 반품되고 새로 공급된다. 이이영 영양사(39)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식재료들을 가락동 등지에서 퀵으로 받는다”고 말했다.
 
영양사의 식자재 검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조리과정에 들어간다. 이때 시행하는 것이 바로 검식이다. 보통 검식은 조리 상태를 확인하고 맛을 보기 위한 것이지만 저염식을 제공하는 감골식당에서는 추가로 염도 측정을 한다. 감골식당 메뉴의 평균염도는 0.6~0.8%로 일반 식당 메뉴의 염도가 1~1.2%인 것에 비해 낮다. 이이영 영양사는 “된장찌개처럼 간이 필요한 음식들은 0.9정도로 유지하는데 이는 일반 병원에서의 환자식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이영 영양사는 “염도 조절 실패를 대비해 한꺼번에 많이 만들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 조금씩 조리한다”며 “이로 인해 이용자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검식이 끝나면 식당 홀에 나가 식당의 위생 상태를 최종 점검하는 ‘배식여건 점검’을 한다. 테이블과 의자는 깨끗한지 정수기에서 나온 물에서 냄새가 나는지 식기는 더럽지 않은지 꼼꼼히 체크한다. 11시가 되어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오면 배식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그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배식이 잘 이뤄지는지 점검한다. 배식이 끝나면 식권을 수합하고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저녁식사 후 다음 날의 식재료 주문을 마치면 영양사의 바쁜 하루가 마무리된다.
 
일과 외 업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관능(官能) 검사’다. 관능 검사란 새로 들어온 식자재들을 평가하는 것으로 제품의 품질과 가격의 적합성을 알아보는 검사다. 육류나 쌀처럼 중요한 식재료의 관능 검사에는 영양사뿐만 아니라 식당의 조리사들까지 모여 검사한다. 이이영 영양사는 “최근 새로운 치킨너겟이 들어와 관능 검사를 했는데 가격 면에서는 적합했지만 너겟에 가슴살이 충분히 들어가 있지 않아 맛이 떨어져 불합격 판정을 냈다”며 관능 검사가 엄격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언급했다.
 
◇한 끼 식사를 위한 그들의 땀방울=94년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해 졸업 후 생협 영양사가 된 이이영 영양사는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봉사한다는 각오로 영양사가 됐다”고 밝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워 하는 학생들을 보는 건 보람된 일이지만 영양사로서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본적인 식단을 짜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영양은 물론 식판에 담기는 음식들의 색감과 육류와 채소류의 균형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식단을 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8년 전 농생대 식당에서 근무할 때 그는 30여 개에 달하는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 이이영 영양사는 “지금은 매년 2회 조리사들이 출품하는 메뉴 선발대회를 통해 신메뉴가 나오지만 영양사가 직접 개발하기도 한다”며 신메뉴 준비에 대한 부담을 이야기했다.
 
식수(食數) 예측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초·중·고등학교나 회사의 구내식당은 매일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이용한다. 하지만 서울대의 구내식당은 학생들과 교직원은 물론 수많은 외부인이 동시에 사용하는 곳이다. 또 학내에는 여러 개의 식당이 있어 이용 인구가 유동적이다. 때문에 식수 예측이 어려워 충분한 수의 메뉴를 준비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이영 영양사는 “저번 건강주간 때 준비했던 연어 갈릭 파스타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요로 인해 30분만에 바닥나는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다”며 당혹스러웠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이이영 영양사는 감골식당만의 어려움도 있다고 말한다. 저염식과 채식뷔페를 운영하다보니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비건’(vegan)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튀김에도 계란 옷을 입히지 않고 젓갈을 넣지 않은 백김치나 겉절이를 주로 제공하는 등 메뉴 선정에 유의해야 했다. 식재료에 제약이 따르다 보니 다양한 메뉴의 제공이 어려워 메뉴가 단순하다는 불만이 접수되기도 하고 최근 식재료 가격 인상으로 식권 가격도 1000원 인상해야 했다. 하지만 이이영 영양사는 “힘든 점도 많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감골식당은 채식주의자들로부터 인기 있는 식당이 됐다”며 “‘두부버섯탕수’나 ‘양송이토마토파스타’같은 메뉴들은 채식을 하지 않는 학내 구성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이영 영양사는 “생협의 영양사는 학내 구성원의 건강과 편의를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감골식당에 가면 카운터에서 인사말을 건네며 학내 구성원들과 소통하려는 그를 볼 수 있다. 이이영 영양사는 “단순히 영양사와 이용하는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건의사항을 비롯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학생들이 먼저 다가와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뱃속은 든든하게, 마음은 포근하게 해주는 음식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이이영 영양사. 앞으로 식당에 갈 때면 그에게 먼저 따뜻한 인사를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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