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물관 '새로운 과거' 전시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과거는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과거는 과연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박물관의 ‘새로운 과거’ 전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11일(금)부터 12월 20일까지 열리는 ‘새로운 과거’ 전시회는 평범한 도예전시와는 다르다. 기존의 박물관 전시가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유물과 함께 작가들이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인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여 작가진이다. 한 전공에서 교수와 졸업생, 그리고 학부생까지 참가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지도교수인 동시에 전시총괄을 맡은 황갑순 교수(공예과)는 “준비기간이 1년이 채 안 돼 학부생까지 참여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그래서 더 보람 있는 전시”라며 소감을 밝혔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선사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의 박물관 유물을 재료·기술, 형태, 기능, 2차원 등 4개의 범위로 나눠 새롭게 접근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유물들은 사군자, 초상화, 탁상, 문갑, 청자, 토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허보윤 교수(공예과)는“과거의 유물은 과거의 것이면서도 현재 존재하는 사물이기도 하다”며 “관람자가 유물을 보며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면 했다”고 밝혔다. 박물관 유물은 과거의 증거인 한편,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현재를 살고 있는 사물이다. ‘새로운과거’ 는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재해석을 통해 만들어진다.
 
전시장에는 유물과 현대도예작품들이 함께 진열돼 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따뜻한 분위기의 전시장에서 처음 관람객을 맞아주는 작품은 탁상과 그 위에 놓인 등잔이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탁상의 중후한 색과 등잔의 하얀색 대비가 시선을 끈다. 전시장의 안쪽으로 들어가면난을 그린 수묵화와 그 아래에 각진 도자기가 놓여있다. 도자기 표면에는 난을 친 선이 무늬처럼 새겨져 있다.
 
 

전시회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이혜미 씨(도자공예 석사과정)의 작품 「연적」(사진①)은 활용도가 높지 않았던 연적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작품이다. 현대에 그 사용 빈도가 줄어든 연적은 물을 담아놓고 먹을 갈거나 채색할 때 적당한 양의 물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다.이혜미 씨는 “장식품이 아무 기능이 없어도 사람들이 소장하듯 연적의 조형적 미에 관심을 갖고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작업을 시작했다”며 작업의도를 밝혔다.
 
일반적으로 ‘연적’이라하면 복숭아 모양의 통을 생각하겠지만 작가는 도넛 모양의 연적을 기본 단위로 높이, 두께, 크기를 바꿔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단면이 사방으로 막혀있는 형태는 도예하는 사람들도 잘 만드는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벼루·먹·붓·연적 등의 소품들을 정리해두는 연상(硯床)과 매화가 그려진 화첩 위 등 연적은 곳곳에 놓여 있다. 이 동그란 하얀 빛을 띤 연적은 허보윤 교수의 말을 빌리면 “하루 종일 만지고 싶은 분신 같은 사물”이다.
 
▲ 사진 2
사진제공: 서울대 박물관

오지은 씨(공예과·08)의 작품 「Arch-Bowl」(사진②)은 백제 유물 세발토기에서 그 모티브를 얻었다. 세발토기는 백제에만 존재하는 토기로 그릇의 깊이가 얕아 오늘날의 접시와 같은 용도로 사용됐다고 짐작된다. 오지은 씨는 “그릇들은 바닥이 다 닿아있기 마련인데 「세발토기」는 바닥과 몸체가 떨어져 있어 건축적 느낌을 준다”며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기존 유물과 다르게 색과 형태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세발토기의 투박한 질감은 매끄러운 하얀색 표면으로 바꿨고 다리와 몸통도 하나로 연결했다. 작가는 “세발토기의 다리, 몸통으로 구분된 요소를 하나로 아우르고자 했다”고 말했다. 다리와 몸통이 합쳐져 속이 꽉 차있을 것 같은 이 그릇은 사실 속이 비어 있는 ‘이중기’다. “속이 꽉 차있으면 무겁고 가마에 넣어 구웠을 때 갈라진다”며 “전체 형태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알맞은 두께를 찾아 속이 빈 형태로 모양을 만들었다”고 작업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접시 부분의 갈색에서 파란색으로 이어지는 색 변화도 인상적이다. 놀랍게도 이 모든 색깔은 한 유약에서 나온 것이다. 학생들의 지도를 맡은 황갑순 교수(공예과)는 “그릇에 사용한 유약은 색깔이 다양하게 나오면서도 균열이 가지 않는 종류의 것인데 이는 학생들 간의 유약 데이터 공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전통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과거를 써내려가는 것이다”는 말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다. ‘과거를 보관하는 곳’이었던 박물관이 ‘현재의’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왠지 모를 어색함을 접고 들어온 박물관에서 당신은 과거와 현대의 유쾌한 조우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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