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폐지 문제로 학내외가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대를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보는 입장과, 서울대 폐지론을 ‘급진적 포퓰리즘’의 정치적 공세로 보는 입장 사이에 대립이 첨예하다. 이 쟁점을 둘러싼 상호적대감이 팽배한 상황이기에 대학개혁의 방향에 대하여 어떠한 발언을 하더라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의 맹공이 예상된다.

 

먼저 서울대 폐지론에 대하여 서울대인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주장은  입시위주의 교육현실과 권력화된 ‘학벌’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집약적 표현이다. 이는 민주화를 이루어낸 비판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울대인은 이 주장이 나오게 된 사회적 원인을 직시하는 동시에, 자신이 받은 혜택만큼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를 항상 돌이켜보아야 한다. 또한 서울대인은 국경의 울타리를 넘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기 위하여 더욱 분투해야 한다.

 

그리고 서울대 당국은 서울대 폐지론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대학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이루기 위한 조직혁신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초학문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학제 개편, 일부 대학의 전문대학원으로의 전환, 교수채용시 ‘순혈(純血)주의’ 경향의 극복, 지방 국립대와의 유기적 교류ㆍ협력체제 구축, 국제적 네트워크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

 

서울대인은 사회적 의무 다하고 있는지 자성해야

일급 대학간 공정한 경쟁체제 수립 필요

 

 

한편, 서울대 폐지론은 독일ㆍ프랑스식의 대학평준화를 통해 우리 교육현실과 ‘학벌’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국공립대 통합과 사립대의 준공립화에 소요될 엄청난 예산을 확보하려면 세금을 신설하거나 기존 국가예산을 전용해야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기존의 사립명문대로 이동하여 재생산될 ‘학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답변만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폐지론은 이공계열의 연구역량의 수월성(秀越性)이 어떻게 가능ㆍ유지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의 예산은 선진국 명문대 예산의 10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서울대는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등재논문수에 있어서 대학별 순위로 세계 35위, 나라별 순위로는 6위를 차지하였다. 국내 대학 중 서울대 다음 순위는 세계 148위였다. 대학평준화는 서울대가 축적해놓은 이러한 국가적 역량의 토대를 해체시킬 위험이 크다. 과학발전은 그 본성상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혜택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폐지론 측이 유념하길 희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 시기 대학개혁의 1차적 목표점은 전국 대학의 통폐합 또는 구조조정에 기초하여 특성화되고 전문화된 다수의 일급대학간의 공정한 경쟁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공계 분야에 있어 이미 구축되어 있는 서울대, 과학기술대, 포항공대간의 경쟁체제를 다른 전공분야에도 만들어 낸다면 ‘학벌’의 폐해는 점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영미권 국가는 물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도 이러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는 애증(愛憎)의 대상이다. 비판을 받는 이유를 반성하고, 기대하는 바를 실현하는 서울대가 되도록 모든 서울대인이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분발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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