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발표된 ‘2012년 세계 음악산업 통계’엔 이례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음악시장의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상위 5개국 중 유일하게 일본만이 전년 대비 4%의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1위인 미국과 고작 0.4%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일본의 인구가 미국의 40%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특히 음반과 디지털 음원 매출을 합한 일본의 음악시장은 다른 나라들과는 커다란 차이점을 가진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전 세계 음악시장은 디지털화 되고 있지만, 일본만은 디지털 음원보다 음반이 80%의 비중으로 앞서며 강세를 보이는 것이다. 원래 디지털 음원이 강세를 보이던 우리나라는 한류열풍으로 인해 2012년 처음으로 음반 매출이 과반수(55%)를 차지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본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 시부야에 위치한 도쿄 최대의 음반매장 타워레코드
사진: 신선혜 객원기자 sunhie4@snu.kr

⃟남녀노소 다양한 음악을 즐기다=일본 제일의 번화가 긴자에 위치한 한 음반 매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다양한 음반들이 눈길을 끈다. 일본의 아이돌과 케이팝은 물론이고, 일본의 전통 의상을 입거나 통기타를 맨 가수의 음반들이 모두 동등한 비율로 전시돼 있다. 실제로 엔카* 코너에서 음반을 고르고 있던 다케우치 사치코 씨(63)는 “평소에도 음악을 좋아해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듣고 있다”며 “일주일에 1번 정도는 새로운 음반이 나왔나 확인하러 온다”고 말했다.
▲ 2. 음반을 고르고 있는 다케우치 사치코 씨

음반뿐만 아니라 일본의 공연 문화도 음악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롯본기 힐즈에 위치한 아레나 광장. 아직 점심시간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광장 안 야외무대에선 저녁 공연을 준비하는 락밴드의 리허설이 한창이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잠시 광장에 앉아 노래를 듣거나, 무대 위의 가수들을 응원하고는 지나간다. 일본 대다수의 번화가엔 이처럼 야외무대가 있어 사전 예약제로 공연이 진행되거나, 게릴라 콘서트 형태의 라이브 쇼가 자주 이뤄진다.
특히 일본 아키하바라에는 라이브 전용 극장이 조성돼 있다. 잡화 할인매장인 ‘돈키호테’ 건물 8층에 위치한 극장에선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아이돌 가수의 공연이 펼쳐진다. 대학로를 방불케 하는 소규모 형태의 극장에는 공연 시작 시간이 3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심지어 사전 예약제를 실시하는 공연은 3개월을 기다려도 표를 못 구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공연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학생, 직장인은 물론 할아버지와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어린 소녀는 야광봉을 목에 걸고 들뜬 표정으로 서있었다. 소녀의 아버지인 기무라 히루시 씨(38)는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을 찾았다”며 “나도 좋아하는 노래들이라 공연이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무라 씨 같이 가족 단위의 관람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아, 이 극장에선 아예 가족석을 따로 예약할 수 있다.
⃟일본, 세계 1위를 넘보다=‘2012년 세계 음악산업 통계’에 따르면 일본 음악시장의 규모는 44억 2,200만 달러로 전 세계 음악시장에 26.8%를 차지한다. 일본이 미국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오른 건 1973년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서 통계를 시작 이래 처음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수치에서 주목할 점은 음반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음악시장의 규모는 음반과 디지털 음원 매출 등을 합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망이 보급되고 음악이 디지털화 되면서, 디지털 음원의 규모가 음반보다 커지고 있다. 미국을 보면 음반 34% 디지털 음원 58%로 이미 음악산업의 형태가 디지털로 변화됐다. 하지만 일본만은 음반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 이유로는 우선 일본은 음반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엔 오리콘에서 집계하는 오프라인 음반 매장만 4,070여 개에 달한다. 300여 개도 채 남지 않은 우리나라에 비해 아직 오프라인 시장이 활성화 돼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일본의 오리콘 차트를 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일본에서 제일 권위 있는 음악 차트인 오리콘 차트는 음반 판매량만을 반영한다. 디지털 음원 매출까지 합해 발표하는 미국의 빌보드 차트와 다르다. 그만큼 일본에선 오프라인 매장에서 음반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음반의 영향력 또한 크다.
이렇게 음반판매량이 많다보니 중고 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대표적인 체인점인 일본의 ‘북오프’는 전국에 걸쳐 900개의 매장이 있으며, 대형마트 수준의 크기를 자랑하기도 한다. 중고음반은 최소 105엔부터 판매되는데, 클래식, 재즈, 제이팝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며 자료도 방대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우에노에서 북오프를 운영하는 담당자는 “중고시장이 활성화되면 전체적인 음반시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중고 매장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대중들이 쉽게 유입되며, 결국 그들 중의 일부가 새 상품을 구입하는 팬층이 된다.
젊은 아이돌에 한정된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활동하는 가수의 폭이 넓으며, 음악의 장르도 다양하다. 7일(월) 발표된 오리콘 차트 10위권을 보면 일본 아이돌은 물론이고 록계열의 음반과, 애니메이션 OST, 케이팝 등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일본 전체 음악 시장의 3%는 클래식이 차지할 정도이다.
일본의 문화적인 특성도 음반 구매율이 높은 이유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음악은 ‘소비의 비반복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여러 번 듣기 위해 같은 음반을 또 구입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다수의 사람들이 음반을 노래를 듣는 용도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장 및 수집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시부야에 위치한 도쿄 최대의 음반매장인 타워레코드. 1층부터 6층까지 모두 음반으로 채워진 곳으로 일본 내 음악 시장 동향과 소비자 패턴을 가장 잘 반영하는 곳이다. 매장을 방문한 켄슈케 스스무 씨(24)는 “좋아하는 가수여서 하나는 소장용으로 보관해 놓을 예정”이라며 똑같은 음반을 2개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하는 직원도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잠재되어 있는 문제들=그러나 일본의 음악시장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존재한다. 우선 음악시장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다. 노래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음반을 구매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같은 앨범에 표지를 다르게 한다거나, CD에 사진집이나 DVD 등을 끼워 재발매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로 지난 4월 발매된 일본 유명 그룹 EXILE의 싱글 앨범은, 같은 앨범을 콘서트 티켓과 함께 재발매 하자 지난달 30일 다시 1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게다가 이 같은 대기업 음반회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아이돌에 치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해 싱글 판매량 1위부터 5위는 모두 아이돌 그룹인 AKB48이 차지했다. 일본도 디지털화 되는 추세에 다른 분야의 음반 판매량이 소폭 줄어들었지만, 아이돌 가수만은 크게 증가했다. 아이돌 가수의 음반 순위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에 편향된 음악이 소비자의 편향과 연결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아이돌 문화에 관심을 보여 이러한 문제들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대두된 불법 다운로드 문제이다. 저작권법이 강한 일본은 자신이 구매한 상품을 공유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을 통해 일본의 음악들이 퍼지고, 일본 내에서 한 자리 대에 머물던 스마트폰 보급률이 2012년 기준으로 22.5%까지 상승하자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MTV 일본의 직원인 앨런 슈와츠 씨(Alan Swartsz)는 “일본에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피쳐폰의 음원시장은 줄어드는데, 스마트폰의 음원시장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작년 10월부터 불법 다운로드 금지법을 강화했다.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음악이나 영화를 소지한 사람에게는 최고 2년 형 또는 벌금 약 2백만엔이 부과하도록 한 것이다. 1년이 지난 현재 일본 정부는 작년보다 40% 가량 불법 다운로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 발표했으나, 아직은 더욱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2012년 세계 음악산업 통계에서 세계 11위를 차지했다. 재작년과 똑같은 수치로 케이팝가수들이 해외진출에 성공하며 음반 판매량이 급속도로 증가한 사실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가장 주된 개선사항으로 편향된 음악시장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아이돌 가수에 편향돼 중장년층 대중음악 장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에 장르 다양화를 통해 소비연령층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음악이 이젠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까지 퍼진 상황에서, 장르와 연령층의 다양함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음악시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었다.
*엔카(演歌)는 일본의 대중 음악 장르의 하나로,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나 정서에 기초한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트로트와 비슷하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