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노조 지부장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주최하는 한상균 전 쌍용차 노조 지부장의 강연회가 열렸다. ‘쌍용차 사태 24명의 죽음,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는 쌍용차 사태 해결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참가해 속이야기를 나눴다.

▲ 사진: 전수만 기자 nacer8912@snu.kr

한 전 지부장은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파업을 이끌었다. 77일간의 파업 끝에 2009년 실형이 선고돼 2012년까지 꼬박 3년의 옥살이를 마쳤다. 출소 후 그는 2012~2013년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 등을 촉구하며 171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는 등 부당해고 문제에 온몸을 던져 싸웠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번 강연회는 한 전 지부장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쌍용차 사태에 대해 5년 동안 몸으로 치러낸 이야기를 술회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5년 동안 쌍용차 사태는 24명의 죽음을 초래하며 급박하게 돌아갔다. 지난 2009년 4월 쌍용차 사측은 일방적으로 전체 인원의 37%에 달하는 3천여 명의 인력감축안을 발표했다. 한 전 지부장은 “정리해고의 필수 조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의 구실을 대기 위해 대주주였던 상하이차 주도로 회계를 조작해 부실기업으로 꾸며 고의부도를 낸 것이 이번 쌍용차 사태의 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당시 쌍용차 자산 평가액은 8,600억 원으로 한국감정원의 자산 평가액에 비해 턱없이 낮고 그에 따라 부채비율과 순손실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 지부장은 “부당해고에 맞서 77일간의 파업에 돌입한 쌍용차 노동자를 공권력이 앞장서 수도, 가스, 전기 공급을 모두 끊은 후 테이저건, 최루탄으로 폭력 진압했다”고 말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노조 측이 대폭 양보한 결과 지난 2009년 8월 8·6합의가 타결됐고 사측은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자를 우선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합의 후 3년 반이 지나서야 무급휴직자 445명이 뒤늦게 복직됐을 뿐 2천 명이 넘는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의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는 동안 해고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우울증 진단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살자가 속출하면서 24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해고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쳤다.

한 전 지부장은 쌍용차 사태가 단일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가 가장 쉽다는 분석이 있다”며 “현행법상 노동3권이 보장돼 있지만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합법적인 파업이 불가능한 현실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권을 주장하며 시위하면 곧바로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거대 언론 때문에 시민들까지 어느 정도 성장 담론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라며 “노동자 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로 자리매김 해야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전 지부장은 “정리해고자 복직은 아직 요원한 상태”라며 “시민, 노동자, 정부가 함께 나서서 사회의 순기능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쌍용차 사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쌍용차 투쟁의 상징적 장소인 대한문 앞을 경찰에 의해 침탈당했을 때 아무 연고 없는 100여 명의 시민이 새벽에 몰려들었다”며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반 시민의 역할과 힘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번 강연회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실현하고자 애쓴 ‘함께 살자’라는 구호를 재차 강조하면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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