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행사] 한국포렌식연합회 공동학술대회

지난 7일(목), 8일 양일간 글로벌공학교육센터(38동)에서 제1회 한국포렌식연합회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대한법의학회를 비롯한 과학수사 관련 9개 학회가 참여한 이번 행사는 ‘미래의 범죄 과학을 만나자(Meet the Future Forensic Sciences)’라는 주제로 과학수사 전반에 대한 활발한 지식 교류의 장이 됐다. 강연 사이의 휴식 시간 복도에서는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연구가 압축돼 실린 포스터 발표가 진행돼 활발한 교류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또 포렌식 전문 전시회도 함께 개최돼 국내 유명 업체가 참여해 과학수사에 관한 최신 기술 동향을 선보였다.

▲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학술대회는 9개 학회가 모두 참여하는 초청 강연과 각각의 학회가 진행하는 분과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대회를 여는 초청 강연에서 연사로 나선 테크엔로 법률사무소 백승민 고문은 ‘디지털 증거개시제도의 도입 필요성’이란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과거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카메라나 컴퓨터 같은 디지털 장비의 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남에 따라 디지털 자료가 사건의 증거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디지털 증거 수집·분석 업무는 2008년 916건에서 2012년 6301건으로 587%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디지털 증거를 다루기 위한 디지털 증거개시제도와 같은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디지털 증거는 아날로그 증거와 다르게 훼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디지털 증거가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증거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재판의 초점이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증거가 조작된 것이냐 아니냐’ 하는 원론적 논쟁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재판부에 따라 디지털 증거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민사소송에서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디지털 증거개시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이디스커버리는 검찰과 피고측이 법원에 자진해서 디지털 증거를 제출하도록 하고 만약 제출된 디지털 증거에 훼손·조작·누락된 사실이 발견되면 재판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백승민 고문은 미국의 이디스커버리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에도 디지털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청 강연에 이어 참가자들은 첫째 날과 둘째 날 각각 7개, 6개의 분과로 나뉘어 분과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중에서 한국혈흔형태분석학회가 진행한 ‘범죄수사: 도약을 위한 첫걸음’ 분과에서는 2005년 국내에 도입돼 과학수사에 이용되고 있는 혈흔형태분석에 대한 발제가 열렸다. 혈흔형태분석이란 유혈 사건이 발생한 경우 현장에 남은 혈흔을 통해 범죄 당시 상황과 행위를 추측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첫째 날 발제를 진행한 서진법률 성정모 대표는 “혈흔형태분석은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연구됐지만 한국에서는 2005년에서야 도입됐다”며 “한국에서는 역사가 짧아 법원으로서 연구자들의 전문성에 의구심이 들 가능성이 있다”고 현재 상황을 바라봤다. 이어 “혈흔형태분석이 과학적 수사방법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도록 법조계나 국민과 같은 비전문가들에게 혈흔형태분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를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둘째 날 강연을 진행한 마산중부경찰서 손부남 경사는 영미권 국가의 혈흔형태분석 기법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발생한 여러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영미권의 경우 절대 다수의 유혈 사건이 총기에 의해 일어나지만 총기 소유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는 칼이나 둔기로 인한 유혈 사건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에 대해 손부남 경사는 실제 경남지역 및 여타 지역 수사기관의 자료를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국내현장의 특수성에 맞춘 용어 분류체계의 개선 및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경찰청 안재경 차장은 축사를 통해 “사회 발전의 이면에 지능화된 범죄가 일어나고 있고 이런 변화 속에서 인권 수사 역시 계속 강조되고 있다”며 지능적인 범죄에 대한 수사와 인권 수사의 접점이 되는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CSI’나 국내에서도 방영된 ‘싸인’ 같은 드라마를 통해 이미 법의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분야가 됐다. 과학수사는 범죄자의 자백에 기대지 않고서도 증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고한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의 영향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건수도 2011년 25만여 건으로 국과수가 개소된 1955년에 비해 500배나 증가했다. 꾸준하게 늘어나는 수요와 관심 속에 열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범죄과학(forensic) 기술 발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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