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직접 환자의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스마트폰, 컴퓨터 같은 IT기기를 활용해 진료하는 원격진료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복지부)가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개정안을 지난달 29일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원격진료 허용을 위한 복지부의 재도전으로, 복지부는 지난 2010년 국회에 제출했던 법안의 단점을 보완하고 의료취약지역을 중심으로 현재 30여 개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해왔던 만큼 이번에는 법안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2015년부터 의료약자(만성질환자, 의료취약지역 주민 등)를 대상으로 하는 원격진료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847만 명의 국민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사, 환자 간 원격진료가 허용된 사람은 고혈압, 당뇨병 등 꾸준한 의사의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자와 섬, 산간벽지 등 의료취약지역 주민, 장애인, 노인 등이다.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기 힘든 국민이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복지부의 입법취지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 대해 관련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원격진료를 통해 제대로 된 진료가 가능할지, 관련 업체만 배불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원격진료는 의료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서에서 “원격진료는 비용 효과뿐만 아니라 안정성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재벌 특혜 사업”이라고 일축했다. 의협 회장단이 복지부를 항의 방문하고 의료 중단을 불사하는 강경투쟁을 예고하면서 복지부와 의협 사이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그래픽: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원격의료 도입, 쟁점은?=복지부를 비롯한 원격진료 도입 찬성 측은 의료접근성 증가를 원격진료 도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이들은 벽지와 오지에 공중보건의를 파견하고 병원을 확충하는 등 공공의료제도 확대를 꾀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지역에 의료접근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원격진료 도입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측은 원격진료 도입이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원격진료는 미국 같이 땅이 매우 넓은 나라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며 “인구밀도 세계 2위인 우리나라에서는 타당하지 않은 제도이며 의료소외 문제는 주치의 제도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찬성 측은 원격진료가 긴 대기시간에 비해 진료시간은 터무늬 없이 짧아 ‘3분 진료’라고 불리는 현행 대면진료체계에 대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측은 ‘3분 진료’ 등의 대면진료 문제도 대면진료 자체의 개선을 통해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무엇보다 반대 측은 의료상업화를 원격진료 문제의 본질로 꼽는다. 원격진료는 혈당계를 비롯한 의료기기 및 IT기기 구입비, 네트워크 사용료 등 과다한 비용이 들어 의료비 상승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정 정책국장은 “결국 원격진료 도입으로 재벌 IT기업의 배만 불려줄 것 ”이라고 말했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에 따라 지리적 접근성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는 동네 의원의 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의료상업화의 문제로 지적된다. 복지부는 동네병원 중심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 정책국장은 “재벌 IT기업이 원격진료의 판을 키워나가는 상황이어서 허용대상 확대는 시간문제”라며 “대형병원이 동네의원과 연계해 진료하는 꼼수를 쓴다면 결국 대형병원 쏠림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원격진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사회적 비용과 단말기 구입을 위한 개인적 비용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도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김혜옥 사무관은 “집집마다 있는 전화, 컴퓨터,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고,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는 이미 가지고 있는 혈당계를 이용하면 되므로 개인적 비용은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북 영양군 김춘화 보건소장은 “원격진료를 위해 병원용 혈당계, 혈압계, 피부경, 심전도계 등의 다양한 장비가 필요하다”며 “노인들이 장비 다루는 걸 어려워해 간호사가 보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족스러운 원격진료를 위해서는 많은 전문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정책국장은 “원격의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책정이 아직 안 된 상태”라며 “이렇게 된다면 가뜩이나 재정이 악화된 건강보험재단이나 환자 개개인에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 전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격진료의 안전성·신뢰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원격진료는 통신망을 타고 온 수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의 식사, 생활습관, 운동량 등을 종합해 진료하지 않고 혈당 수치 하나에 의존하는 원격진료체계에서 의사가 합병증을 간과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게 반대 측이 드는 대표적인 예이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약 처방에 의존하는 원격진료 체계에서 의사와 동떨어진 환자는 자가 관리(self-care)에 의존하고 결국 이는 환자의 약물의존성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미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통해 충분한 검토를 거쳤기 때문에 안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제도가 국민의 건강과 직결돼 있고 한번 굳어지면 다시 되돌리기가 어려운 만큼 원격진료 제도의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충분한 협의를 통해 예상되는 모든 부작용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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