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서유럽에서 이번 6월 6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 60주년 기념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11월 11일)이 전몰자 추모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5월 8일)을 압도하면서 전승축하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강대국간의 분쟁으로 빚어진 무의미한 대참사로 기억되는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가장 정의로운 전쟁’으로 추앙받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승리의 시발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각국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신화를 달리 기리고 있지만, 결국 전쟁에서 기억해야 할 바는 다른 데 있음을 느끼게 된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 행사를 미국의 역할과 정당성을 기념하는 자리로 삼고자 했다. 클린턴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기념식을 이용해서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승리로 이끌어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보장한 미국의 힘을 찬양한 이래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 스티븐 앰브로스의 대중적인 역사서들, 1998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탐 브로코의 『가장 위대한 세대』등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미국인들의 집단적인 기억 속에서 신화화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기억에 기대 테러와의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반면에 이전부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정당한’ 전쟁으로 기리는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프랑스에서는 관료들이 공개적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더러운’ 이라크 전쟁과 ‘신성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부시키지 말 것을 경고했다. 영국 내에서도 ‘악한’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는 부시 대통령이 ‘선한’ 전쟁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정신을 되새길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다. 미군의 포로학대와 노르망디 참전용사들의 전투와 희생은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독일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의 유산을 뒤로 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10년 전 헬무트 콜 총리가 “수십만의 독일인들이 비참한 죽음을 당한 전투를 기념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만(그의 형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에게 부상을 당했다), 올해 슈뢰더 총리는 기념식에 직접 초청받아 참석했고 독일인 71%도 이를 지지했다. 독일은 홀로코스트 등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나치 전쟁의 피해자이고 따라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수혜자, 곧 ‘정상적인’ 유럽국가임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유럽 해방’의 시작이 아니었고, 그 희생이 ‘아름다운’것만도 아니었다. 러시아에게 그것은 기껏해야 뒤늦은 참전이자 냉전의 시작이었다. 또 독일은 서유럽과의 화해에는 성공했지만,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과 전쟁기억에 대한 갈등은 여전하다.

 

 

또한 추앙받고 있는 노르망디에서의 희생자 가운데 수백 명은, 최근 증거에서 드러났듯이, 실은 영국 해변에서 실시된 상륙훈련 도중 실탄에 맞아 죽고 암매장된 이들이다.

 

‘가장 길고도 잔인한 하루’를 몸소 겪은 연합군이나 독일군 병사들의 편지 에는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리움만 가득하고, 살아남은 병사들이나 그 해변을 목격한 민간인들은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상흔을 입은 채 오로지 그 날을 잊고 싶어한다. 역시 전쟁에서 기억할 것은 ‘전쟁은 기리기 어렵다’는 사실뿐인 듯하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