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남 석사과정
정치학과
나는 지난 12월 대선 무렵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논쟁 상황을 “철학정국”이라 부른다. 정치의 영역을 진리/진실의 문제가 지배하고 때문이다. 이러한 정국이 지속되면서 한국의 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진실은 있는가?”, “진실을 알 수 있는가?”, “진실을 알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현재 정국에서 밝혀야 하는 진실은 과거의 지나간 사건 속에 숨겨져 있는 사실관계이며 이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확인해야 할 사실관계의 가짓수가 상당히 많다는 점인데, 정부-여당 대 야당의 진실공방이 핵심을 이루는 현정국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확전일로이다. 현정국은 17대 대선기간 중 민주당 측이 국정원의 일부 직원이 박근혜 대선후보와 새누리당 선거캠프에 유리한 방향으로 인터넷 댓글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했다. 검경의 수사에 의해 국정원·군사이버사령부의 일부 직원이 선거중립을 위반한 정황이 포착되었지만 수사의 자체의 정확성과 국가기관의 조직적 차원의 선거개입 여부, 여당과의 연관성이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이 쟁점은 대선 전후의 다른 쟁점들과 중첩되면서 난해한 정국을 형성했다. 국정원 관련 초동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의 사건은폐 의혹, 노무현 전대통령의 NLL포기발언 및 사초폐기 논란,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죄 논란이 동시에 제기됐다. 국정원에 대한 수사가 한창일 때 검찰총장이 사생활 문제로 사임했고 국정감사장에서 국정원특별수사팀장이 수사과정에 있어서의 외압문제를 제기하고 직무배제되었다. 각각의 논란은 핵심적인 사실관계나 관련자들의 숨겨진 의도가 확인되지 않은 채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면서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처럼 되어간다.

현 정국의 핵심은 정치문제와 진실문제 사이에 악순환이 반복되어 ‘정치’와 ‘진실’이 함께 소멸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여야간 상호 의혹제기로 긍정적인 의미의 정치적 논의는 사실상 수개월째 중단된 상태다. 정부와 정당의 위법행위를 견제해야 할 사법당국이 정치의 논리에 완전히 포섭되어 있는 인상을 준다. 의혹은 또 다른 의혹에 의해 묻히고, 밝혀진 사실은 다시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다.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진실공방이 있고, 이러한 진실추구과정이 다시 정치영역의 논리에 종속되는 상황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진실이 드러나더라도 시민들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 정국 속에서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오늘날 한국정치를 지배하는 진실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와 진실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일종의 원칙론만이 남은 셈이다. 시민들은 이번 정국의 핵심인 국정원 댓글 논란이 절차적 민주주의, 나아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에 관련한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정치영역에 대하여 원칙적인 문제해결의 책임을 제기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정국의 해결을 위한 원칙과 앞으로 있을 싸움의 정당한 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꼬리물기식 의혹제기를 중단하고 우선순위를 두어 논란을 해결하려 노력해야한다. 사법당국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투명한 수사로 확증된 불법사항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다시 시민들은, 이 모든 상황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원칙의 실현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진실은 존재하고, 알 수 있으며, 이것을 알기 위한 방법은 지속적인 원칙의 강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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